되지 않을 선진국, 오지 않을 선진국

 

되지 않을 선진국, 오지 않을 선진국

   어떤 손님과 유명한 음식점에서 식사할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외식을 즐기고 있는 큰 식당이었다. 신부라 하면 부동산 투기할 일도 없고 보석으로 치장할 일도 없으며 멋드러진 집이나 처자식 먹여 살릴 걱정으로 번잡스럽지 않아도 되지만 유달리 맛좋은 음식과 그럴듯한 음식점에 상당한 집착을 보이고 마는 것이 사실이다. 드러남이 없이도 사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식사가 계속되던 중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몹시 시끄러운 식당 안을 네다섯 살 정도의 두 아이들이 온통 휘젓고 다니는 것이었다.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애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 아빠도, 종업원들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그 어떤 사람도, 무감각한 것인지, 남의 집 자식에게 뭐라 해서 행여 욕이나 먹게 되지 않을까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시끄럽고 소란스러워 내가 먹는 그 음식에만 집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자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한참 지났고 급기야 내가 종업원 한 사람을 불러 아이들의 부모에게 얘기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종업원이 두어 번 쯤 아이의 부모님께 정중히 얘기하는 과정이 있었으나 애들은 여전하였고, 결국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망쳐버린 외식이었고 오랜만에 만나게 된 나의 손님과는 찝찝한 만남이 되고 말았다.

   정치하시는 어떤 분들이 잘하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국민개인소득 2만 불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도 선진국에 진입하게 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2만 불이라는 숫치가 선진국의 기준이 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모른다. 2만 불의 시대가 오든 오지 않든, 그 2만 불이라는 기준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 그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분명히 아는 사실 하나가 있다. 그것은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삶의 형태들을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소위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코 되지 않을 선진국이요, 오지 않을 선진국이다. 식당이란 곳이 내 돈 가지고 내가 밥을 사먹듯이 너도 네 돈 가지고 너의 밥을 사먹는 곳일 뿐이며, 주변을 깡그리 무시하는 행동을 해도 좋은 곳이고, 이런 외식의 자리에서나마 내 자식들이 맘껏 기를 발산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나 기쁨의 표현이 아닌 소란을 피울 권리까지도 내 밥값으로 샀다고 생각하며, 행여 누가 주위에서 뭐라고 하면 눈 부릅뜨고서라도 남의 집 애들 기를 죽이는 당신은 도대체 뭐냐는 식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IT 강국이요 월드컵 4강 신화의 나라라고 뻐기더라도 아직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미개국이거나 개발도상국이며 바보 같은 혼자만의 멋에 겨운 초라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되는 존재라는 것, 그렇게 함께 살려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야 되고 상호간에 불편을 끼치는 일은 삼가야만 된다는 것, 그리고 혹시 그렇게 남에게 불편을 끼치게 되면 그것이 범죄이고 어떤 형태로든 함께 살기 위한 사회에서 격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사회의 기본원리에 관한 내용들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가정교육이 없는 한, 대한민국에 선진국의 시대는 오지 않는다. 위대한 국가를 위대한 정치가가 만들어 줄 것이며 2만 불이라는 숫자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착각이요 환상이다. 위대한 국가는 위대한 국민이 만들며 그 위대한 국민은 사회의 기초단위인 각 가정에서 비롯된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여기 저기 침이나 가래침을 보지 않아도 될 때, 자동차의 차창 밖으로 던져지는 담배꽁초를 보지 않아도 될 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휴대폰 벨소리의 심포니나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때, 심란함이나 부담스러움을 안고서라도 어쩔 수 없이 공중변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때,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선진국의 시대, 그리고 문명화된 사회의 일원이 된다.

Posted by benji

2007/03/10 20:20 2007/03/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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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너나 잘 사세요

 

제발, 너나 잘 사세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에게 상담차 호송(?) 되어 온 승모라는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아이가 컴퓨터 오락에 빠져 학교를 등한시하고 심지어는 이를 은폐 엄폐하기 위하여 거짓말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가 사악한 길에 접어드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이와, 또 엄마와 만나보니 내게 승모는 극히 정상이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따라 뭐든지 더 잘 해보려는 과도한 열성이 일을 망쳐버리듯 아이가 나름대로 커 나가길 기다려주지 못하는 엄마의 조바심과 과도한 열성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엄마는 나와의 만남 뒤에 속을 끓여가면서 아이에게 뭔가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셨다. 그럼에도 승모에게 엄마가 원하는 식의 뚜렷한 변화가 없는 채로 시간이 얼마쯤 흐른 뒤, 승모 엄마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아이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래서 승모네는 이산가족이 되고 승모 아빠는 말 그대로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언젠가 승모 엄마는 결단을 내렸고, 승모만을 남겨놓은 채 한국에 돌아왔으며, 승모는 혼자서 아직도 미국이라는 곳에 살면서 대학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 승모가 의젓한 모습으로 지난 해 말에 한국에 잠깐 다녀갔다.

   내 자식 없고, 또 자식 한 번 낳아 키워본 적도 없는 녀석이므로 속 편한 소리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너도 네 자식 낳아 키워보면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자식 없는 사람이라는 자유로움으로 배짱 좋게 몇 마디 사설을 붙이고 싶어진다. 첫째, 우리 부모님들은 제발 자신들의 인생이나 잘 사시고 챙기셨으면 좋겠다. 자식들을 위한 인생을 살지 말고 자신들을 위한 인생을 사시라는 것이다. 요샛말로 하자면 ‘제발, 너나 잘 사세요’ 하는 말이다. 자식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되는 지도 모르면서 자식들 교육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고 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다. 이런 경우의 부모님들은 부모라기보다 새끼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 새끼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들이 주변에 있는지 없는지 조바심 내면서 끊임없이 발톱을 세우는 동물의 어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둘째,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그 관계가 종속관계나 상하관계 내지는 소유관계가 아니며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같은 관계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손자를 보신 동네 할머니들이 문 앞에 금줄을 치시면서 ‘우리 집에 아기 손님이 드셨다.’ 하셨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조물주께서 부모와 자식으로서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의지하고 기쁨을 나누며 살아가라는 소중한 손님 같은 관계요, 인연이다. 자녀를 손님으로 대한다 함은 내 식대로 아이를 만들고 싶어 하는 부모와 이에 반항하는 아이들의 관계와는 아주 다르다. 손님과의 관계는 마음이 오고 가는 정중함과 예를 갖춰 대접해야 하는 사이 이다. 그래서 교육은 마음의 일이다. 셋째,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부모님들은 잘 생각해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내가 못 배웠으니 자식들만이라도 잘 가르쳐야 되겠다고 하고, 내가 배고프고 못 살았으니 자식들만이라도 잘 살게 해 주어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믿을 것이 결국 내 자식밖에 없다’는 식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발상이요 스스로 못남을 드러내는 치졸함이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와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식을 둔 부부간에 아름답게,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자기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아름답게, 열심히, 행복하게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자기도 그 엄마나 아빠처럼 아름답게, 열심히,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은 이런 방학기간 동안에 공항에 가면 외국에서 공부하는 애들이 오고가는 광경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 언젠가 이런 방학기간에 외국으로 부인과 함께 자식을 떠나보내고 난 뒤, 쭈그리고 앉아 창문 밖을 멍하니 내다보면서 ‘도대체 이게 뭔 지랄인지 모르겠네.’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쓸쓸한 어떤 아빠의 모습이 오랜 기간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Posted by benji

2007/03/10 20:17 2007/03/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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