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타령


지지타령

어린 아기들이 뭔가 더럽거나 지저분한 것을 만지려고 할 때 그런 아기들을 향해 어른들이 지지야 지지!’ 한다. 이럴 때 쓰는 한자말의 글자는 아마도 그칠 지일까 싶다. ‘안 돼!’ 라든가, ‘멈춰!’라는 뜻일 것이니 말이다. ‘금지禁止폐지廢止니 할 때에도 이 글자가 들어간다. ‘그칠 지는 가만히 왼쪽 발을 내려다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발목 아래 부분의 발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글자로서 , 멎다, 멈추다, 그치다, 머무르다, 억제하다등의 뜻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 둘을 겹쳐 지지止止라고 하면 거기 그대로 멈추다’, 나아가 머무를 곳에 머무르다라는 뜻이 된다. 사람은 제가 머물러야 할 곳을 알아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있을 때 품위를 유지한다. 언젠가 떠나야 할 이승의 삶이요 인생살이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인생의 매듭마다 내가 있을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하는 문구가 단지 공공 화장실의(여자 화장실에는 가보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으니), 적어도 남자들의 화장실 표어로만 정착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칠 지앞에 알 지를 붙여 지지知止라고 하면 의미는 조금 더 깊어지고 분명해진다. ‘멈출 것을 알다라는 뜻이 되어 자신의 분수에 지나치지 않게 그칠 줄을 아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지지止止하고 지지知止해야 한다. 머무를 곳에 머물러야 하고, 언제 그만 둘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까칠이 아니고 깔끔이요 정갈이다. 질척거리면 지저분해진다. 그러나, 그렇게 살고 싶다고 살지만, 사람이 자기 머무를 곳이나 분수를 안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경지境智의 경지境地이다. 어쩌면 인생은 죽을 때까지 이를 모르거나 가늠하려고 애쓰다가 끝나는지도 모른다. 봄날 제비가 지지배배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처럼, 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직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나만의 지지止止지지知止를 노래하다 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자님께서 제자 자로子路에게 지지위지지 부지위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안다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논어 위정爲政이라 하셨을까!

 

 


Posted by benji

2016/12/28 09:34 2016/12/28 09:34

선물膳物

선물膳物

연말이다. 선물과 기부의 계절이다. 영어로 선물이나 기부를 뜻하는 단어들은 대개 presentgift(애정이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주는 것), donation(거저 주는 것), 그리고 bonus(규정 외에 덤으로 주는 것) 등이 있다. 이 중에 요즈음 같은 계절에 가장 많이 쓰는 donation이라는 어휘는 라틴어 ‘donare(주다)’에서 온다. 이를 우스개 소리로 우리 말 돈 내시오’, ‘더 내시오’, ‘다 내시오에서 왔다며 기부를 종용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원래는 라틴어 ‘donum(선물)’과 연관되어 있다. 흔히 쓰는 ‘pardon(par=모조리)’donation의 어근이 붙어 있어서 모조리 주다아낌없이 주다를 거쳐 용서하다라는 말에 가 닿는다. 원래 이는 인간의 어휘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모든 것을 다 내놓으시고 모든 것을 다 주셨으니 인생 그 자체가 선물인 것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그처럼 서로 하느님과 같은 행위를 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라틴어로 은 자기 자신을 나눠주고 선물하는 것Bonum est diffusivum sui.’이라고 정의한다.

한자말에서 선물膳物’(뜻을 나타내는 육달월=, 와 음을 나타내는 선이 합하여 이루어짐)이란 낱말도 깊은 뜻이 있다. 이 말에서 선물의 을 이루는 착할 선을 추적해보면 동물 자와 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아 양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를 뜻한다고 본다. 또한 옛날 재판에는 양 비슷한 신성한 짐승을 썼으므로 신에게 맹세盟誓하고 한 재판이라고 하는 뜻을 담아 나중에 훌륭한 말훌륭함좋다의 뜻이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라는 글자와 사이에 풀 초를 모양 그대로 다리가 달려있는 풀밭 위의 제단으로 본다면 제단 위에 양을 올려놓고 하느님께 아뢰는 것을 쉽게 연상해 볼 수 있다. 하느님께 제물을 드려 기도하는 행위 말고 인간에게 선하고 좋은 일이 또 있을 수 없다. 아니면 이라는 글자의 가운데 가로지른 가로 획을 입술로, 두 점을 이(치아)로 보아 양고기를 입 안 가득 넣어주는 상형으로 보기도 한다. 옛날에는 소를 잡을 수 없어서 양고기가 잡아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고기였다고 볼 때에 양고기를 입에 넣어주는 것은 참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그 양을 인간에게 주신 분도 결국 하느님이시므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입에 고기를 먹여주신 것이 된다. 그것이 선이다. 이런 글자를 담고 있는 선물의 역시 고기 육에서 비롯된 육달월을 붙여 선물 선’, 혹은 반찬 선이 된다.  

서양 말이 되었건, 동양 말이 되었건 선물이나 기부하느님담고 있고, 또한 닮고 있다. 그래서 복음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하면서 그 행위에 있어 겸손을 강조한다. 감히 하느님의 행위를 하는데 겸손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내가 선물하기 전에 반드시 하느님께로부터 내가 받은 선물과 은총에 대한 깊은 감사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 선물의 영역에는 선행과 애덕, 좋은 일을 한다는 의식마저도 없어야 한다. 선물의 기본을 이루는 내 자신의 일부나 재화 자체가 지닌 이라는 속성 때문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물이나 기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칫 를 강요하는 폭력일 수 있다. 누군가가 선물을 주면서 이 선물을 "반드시" 이러저러하게 사용해야만 한다고 강조할 때에 이는 이미 선물이 아니다. 어줍지 않게 잘못 하느님 흉내를 내는 그 누구이고 무엇일 뿐이다.

Posted by benji

2016/12/19 12:07 2016/12/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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