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음이 하나가 된 이야기

두 얼음이 하나 된 이야기

어느 동굴에 기나 긴 겨울 동안 꽁꽁 얼어 바위 같아진 두 개의 커다란 얼음덩이들이 있었다. 높은 산 위의 경사면, 숲속 한 가운데, 바위와 덤불이 무성한 곳, 그곳에서 두 얼음은 고집 센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그저 냉랭한 얼음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뜨다 눈길이 마주치면 마지못해 ‘안녕?’ 하였거나, 밤에 잠들기 전 같은 때에 ‘안녕!’하는 짤막한 인사말이 전부였던 관계였다. 그러한 그들의 관계 안에서 ‘얼음장 깨기’라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었다. 막연하게나마 각자 생각하기를 ‘언젠가 저 녀석이 내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 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얼음덩어리들은 누군가에게로 혼자서는 다가 갈 수도 없었고 다가 올 수도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얼음들은 서로 점점 더 굳게 마음의 문을 닫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동굴에는 오소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오소리가 어느 날 우연히 얼음들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이 동굴 안에만 갇혀 지내는 너희들이 불쌍하기만 하지. 동굴 밖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맑은 날인데…’ 이 말을 들은 얼음들이 무겁고도 질질 끌리며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끄윽 끄윽 댔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태양이라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알아왔던 것이다. 갑자기 얼음 하나가 중얼거렸다. ‘도대체 태양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겼을까?’ 오소리가 대답했다. ‘정말 굉장한 것이야. 생명, 그 자체이지.’오소리의 말을 듣고 한 얼음이 ‘정말? 그럼 그 태양이라는 것을 좀 볼 수 있도록 아주 조금만, 들키지 않게 저기 나무와 덤불 사이로 작은 구멍을 좀 내 줄 수 없겠니?’ 하고 말했다. 오소리는 ‘문제없지.’하며 얼음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에게 따뜻하고 감미로운 가느다란 햇빛 한 줄기가 비쳐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햇빛은 온통 황금빛 줄기였다.

시간이 흘렀다. 몇 날 며칠이 그렇게 흘러가면서 동굴 안은 햇빛으로 조금씩 미지근해져 갔다. 어느새 얼음은 자신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녹아 흘러내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원래대로의 옛날 그 모습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다른 쪽에 있던 다른 얼음도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조금씩 그렇게 자신이 녹아 흐르면서 얼음은 각각 자기 자신들로부터 한 줄기 물줄기가 되었고 그렇게 물줄기가 되어서는 어느 순간 합쳐지더니 하늘을 닮고 그 하늘의 빛깔을 띤 수정같이 맑은 연못이 되고 있었다. 두 얼음은 아직도 서로 냉랭함을 느끼면서도 자신들의 연약함과 외로움, 그리고 불안과 걱정들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둘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방울새들과 몇 마리의 종달새들이 날아오더니 그 연못에서 목을 축였다. 여러 곤충들이 몰려들어 연못 주위를 맴돌았다. 꼬리가 탐스럽고 커다란 다람쥐들이 다가와 몸을 씻었다.

이 모든 행복이 이제는 한 마음이 되어가던 두 얼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줄기 햇빛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 마디 인사, 한 번의 손짓, 한 번의 미소 때문이었다. 우리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렇게도 작은 ‘조금’인 것이다.(이태리어판 ‘살레시오 가족지’ 2011년 7-8월호)

Posted by benji

2011/07/14 10:30 2011/07/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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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igna 2011/08/08 22:31 # M/D Reply Permalink

    행복은 내어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2. 감사합니다. 2011/12/05 08:54 # M/D Reply Permalink

    밤을 새워 일을 했지만 별로 성과가 없어
    마음이 어수선 해 이것저것 웹서핑을 하던 중
    신부님 홈페이지에 닿아 글을 읽고 있습니다.
    마음이 많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네요
    글에 고요함이 스며들어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한주간도 잘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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