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2호는 안녕하신가요?

국보 2호는 안녕하신가요?

겨울이 북쪽으로부터 오듯이 봄은 남쪽으로부터 온다. 계절이 그렇게 오고가듯이 우리의 인생도 오고 간다. 오고 가는 시간의 교차 속에서 하루, 한 달, 1년, 10년, 100년, 아니 600년을 두고 보아 가장 큰 사건이고 기억해야 할 사건을 물을 때 즉시 떠오를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숭례문의 다비(茶毘)라고 했고 분신(焚身)이라고도 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알아왔고 배워왔던 남대문이라는 친근한 이름이 갑자기 범상치 않은 숭례문이어야만 한다고 고집하듯이 많은 이들이 “숭례문”을 외치며 그 폐허와 잿더미 앞에 나아가 엎드려 하얀 국화꽃을 드리고, 울음으로 통곡을 하며 큰절을 올렸고, 무릎 꿇어 기나긴 편지를 바쳤으며, 한풀이 굿을 벌이는가 하면 급기야 상여를 메고 나와 곡을 하기도 하는 등 이른바 ‘숭례문 현상’을 연출하였다. 마음과 몸의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 이들은 이 모든 것을 그저 TV 화면을 통해 바라만 볼 뿐이었지만 마음으로는 동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웃나라 市長 비아냥에 알게돼

모두에게 충격이었고 비통함이었다. 하룻밤의 허무가 지나가자마자 어떤 이는 국보 1호 남대문을 성금으로 복원하자고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사과하였고, 다른 이는 높은 울타리로 재빨리 덮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치우려 했다가 그게 무슨 짓이냐며 대드는 사람들이 무서워 안이 들여다보이는 울타리로 바꾸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연출하였다.

목소리 크고 힘 있는 이들과 언론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이고 잘못이냐며 희생양을 찾는 숨은 그림 찾기에 돌입하였고, -그래 보았자 2주 정도 지나 결국 유야무야되어 버린 것이었지만-그럴 즈음에 불난 집에 부채질 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게 이웃나라 시장(市長)이라는 작자는 “국보 2호는 안녕하신가요?”라며 비아냥거렸다.

얄미웠지만 화들짝 놀라는 심정으로 국보 2호가 무엇인지 우리는 그제야 알게 되었고, 종로 탑골공원으로 달려가 원각사지10층석탑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유리 상자에 모셔놓았으니 불 탈 일이 없다 싶어 안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공허하고 슬픈 까닭을 보면, 우리의 짧은 생으로 도저히 실감할 수 없는 600년 동안 우리 곁에 있어 왔던 남대문이 홀연히 사라진 때문이었고, 교환가치만이 횡행하는 물질주의의 어지러움을 잣대로 보아서 비록 1억짜리 값어치가 안된다고 하지만 몇 안 되는 유적 중의 하나로 우리를 지켜주었던 상징가치와 그 체계가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며, 아무리 똑같이 복원한다 하여도 모조품이거나 복제품일 뿐이라는 사실 때문이고, 우리는 이렇게도 어이없는 상황을 왜 거듭거듭 맞아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뭉개진 자존심과 자괴감 때문이었다.

사실 그렇다. 비슷한 참극을 수도 없이 겪어오면서 ‘인재’ ‘책임소재’ ‘시스템’과 같은 어휘들을 누누이 반복했지만 그런 게 어디 하루 이틀에 되는가 말이다. 국민소득이 어쩌고저쩌고 해서 돈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국가나 정치가 내지는 법률이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니 이 모든 참담함은 우리와 내 자신의 수준 미달이 스스로 벌여 놓은 못난 짓에 다름아니다.

우리와 내 자신의 성숙이 그만큼밖에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절감할 일이다. 공동가치와 공동선을 도외시한 채 나만을 위한 이기주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자성하여 새로운 각오로 다지면서,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자위로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우리들의 利己’ 자성계기 됐으면

불과 한 달 전이 이미 오래 전의 까마득한 옛 기억으로 변해버린 우리의 2주간 야단법석이 행여 이기주의로만 살아온 우리와 내 자신을 은근슬쩍 못 본 체하기 위해 애써 다른 사람들에게 탓을 돌리는 소동은 아니었는지도 자문할 일이다.

살아가면서는 함께 ‘지켜야’ 할 가치가 있고, 후대에 ‘남겨야’ 할 가치가 있으며, 내 몸처럼 ‘위해야’ 할 가치가 있음을 가슴 치며 깨우칠 일이다.(2008년 3월 7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