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세 가지

봉헌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오늘날의 현대 봉헌생활을 어렵게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세속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이다.

어쩌면 이 셋은 세 얼굴을 하고 있는

한 가지 것일 수도 있다.

 

세속주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주변의 평가와 인정에 급급하는

강박적 의존에 그 뿌리를 둔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구,

멋있다는 말 한 마디에 안도하는,

그런 바보 같은 내용들이

수도자들을 세상으로 내몰고 만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우선권이고

그분이 나를 알아주시면 그만이라는

긍지와 배짱을 상실한 결과들이다.

 

개인주의는 자아실현만을 위해 살고

자기완성만을 추구하는 삶이다.

개인주의는 봉헌생활 안에서

곧잘 소위 전문가라는 말로 포장되어

다른 그 누구와도 함께는 일하지 못하는

외골수나 똥고집의 양태를 띄기도 한다.

개인주의는

주님께서 공동체로 제자들을 부르셨고,

공동체로서 일하라 하셨으며,

그 공동체 안에

함께 하시겠다 하신 사실을 망각한

현대사회의 가장 극심한 이단이다.

 

쾌락주의의 예로서는

물질적인 것들에 안주하거나 끌어 모으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취미 같은 것에 집착하면서,

혹은 공동체 앞에 소위 건수를 올려

능력을 과시하며 느끼는 희열이 있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 쾌락주의는

소비주의나 물질주의와 밀접하다.)

또 보통의 수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쾌락으로서는

입을 통한 쾌락,

잠을 통한 쾌락도 있다.

조그만 입을 통해 먹어댄 소, 돼지,

물고기들의 마릿수만 세어 본다 해도

입을 통한 쾌락의 추구를 짐작할 수 있으며,

틈만 나면 부족한 잠을 보충하겠다고

마치 작정이라도 하듯이

하느님 대전에 나아간 거룩한 묵상시간 마저도

잠으로 떼우기 일상인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가능하다.

쾌락의 근본은

하느님 찬미의 희열과 기쁨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기도하는 손

기도하는 손

 

뉴욕의 심리치료사인

토마스 호라Thomas Hora라고 하는 사람이

개인주의를 깍지 낀 두 손으로,

그리고 참된 인간관계를

기도하는 손으로 묘사한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머지

외로움과 소외감에 젖어

자꾸만 누군가의 손을 찾아 맞잡고

깍지를 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서로 깍지를 강하게 끼면 낄수록

손가락의 마비와 고통,

결국 따로따로인 손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상대방을 위한 배려와 공간이 없는

그런 관계는 서로를 질식시키고 만다.

결국 그런 관계의 뿌리는 개인주의이다.

 

이런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참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란히 함께 모아진 두 손,

기도하는 두 손처럼 되어야 한다.

 

기도하는 두 손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서로를 지적할 수도,

감싸 안을 수도 있는 손이다.

기도하는 손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애초에 있었던 사랑,

위대한 사랑을 가리킨다.

 

기도하는 손은

더 이상 서로에 대한 두려운 집착이 아니라

앞뒤 좌우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항상 새롭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이루며

자유로운 춤을 출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