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개혁

 

변화와 개혁  


   겨울이 가고, 꽃들이 피었으며, 옷차림들이 바뀌었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한 번 “변화”니 “개혁”이니 하는 후렴구들을 아침저녁으로 들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12월에 있을 이른 바 대선에 나설 이들이 하나같이 변화와 개혁을 하겠다며 뭔가를 바꾸어 놓겠다고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조직이나 정치가들이 변화와 개혁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땅덩이가 작은 탓인지 그 정치구호들의 메아리가 유별나다. 앞으로 얼마동안은 파란색이니 노란색이니 하는 요란한 색깔들에 휘둘릴 것이고, “못 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소용없다” “우리가 남이가?”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하는 식의 웃을 수밖에 없는 논리와 읍소, 무언의 협박 같은 구호들에도 시달려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뭔가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런 와중에서 또 다시 변화와 개혁을 거론하고 있다. 



  변화와 개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으레 맞는 유혹들이 있다. 첫 번째는 손쉬운 해결책을 찾고 싶어 하는 유혹이다. 이는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뭔가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열의와 열정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은 시간이 가면서 한참이 지나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보편적 자괴감의 현상을 유발하고, 왕왕 실망과 허탈, 자기상실감으로 오히려 더 많은 역작용과 부작용을 유발하고 만다. 두 번째의 유혹은 힘과 권력의 유혹이다. 이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소위 ‘아무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식으로 자기들 식의 왕국을 건설해 보려는 유혹이고 그들이 가진 힘과 권력으로 가시적인 해결책을 도모해 보려는 유혹이다. 이는 파워와 영향력의 유혹이다. 이러한 유혹은 배타적인 이기심 때문에 통합이 아닌 분열을 야기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불협화음과 또 다른 논쟁을 더할 뿐이다. 세 번째의 유혹은 세상의 구조와 환경이 변화되어야 한다면서 자신은 전혀 바뀔 것이 없다는 자만의 유혹이다. 이는 변화되어야 할 대상을 지목하면서 그들이 오만방자하고 어리석다 한다.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무척 바쁜 나머지 자기 자신이나 자기조직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고 자기 존재의 원천과 직면하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어느 조직 내에서든 그 조직의 변화를 도모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순수한 수단, 가장 힘없이 보이는 수단이 가장 강한 수단이라는 사실에 믿음과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수단은 제도나 구조, 양태의 변화가 아니라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그 마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는 수단이다. 참된 변화는 구조에서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이루어진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은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고지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여정이다. 이때의 변화는 높은 사람들이 위에서  만들어가는 변화가 아니라 낮은 곳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에서 시작되는 깊은 변화이다. 밖으로부터 시작되는 변화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변화인 것이다.
   한편, 변화의 주역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통합과 조정에 필수불가결의 요소인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을 지녀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이란 말마디로 전달되는 것들 말고도 말 이외의 여러 가지 수단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주변에 있음을 아는 지혜이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덕이며, 그러기 위해 품위와 점잖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해 가는 과정에 인내를 다하는 슬기로움이다.

   끝으로,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5년, 아니 불과 몇 년 내에 위대한 치적과 기념비, 역사에 남는 업적을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아집과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하다가 하지 못하면 다음 사람이 이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리고 내가 했던 것 보다는 나 다음의 세대가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참된 변화와 개혁의 일꾼들은 다음세대를 위해 기꺼이 징검다리요, 썩어지는 거름이며, 밀알이고자 할 뿐인 것이다.
(2007년 4월7일 경향신문)

봄꽃, 그리고 개(犬)혁

 

    꽃이 피는 시절이다. 오며 가며 길거리의 꽃집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꽃에는 아주 비싼 꽃도 있고 그저 단돈 몇 푼에 팔리는 꽃도 있으며, 다른 꽃이 팔릴 때 덤으로 끼워 팔리는 꽃들이 있는가 하면, 꽃집에서는 아예 팔리지 않는 꽃들도 있다. 들에만 피는 야생화들을 이제는 온실에서 키워 내다 파는 바람에 편리한 부분도 있긴 있지만 그 꽃으로 인하여 들에 나갈 필요가 줄었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운 면도 있다. 비싼 꽃이라면 백합이니 장미, 또 이름도 외우지 못하게 얄궂은 외국말 꽃, 그리고 화려한 꽃들이 많다. 그런 꽃들은 머리가 아플 만큼 향기도 아주 진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채송화를 좋아 한다. 생김새나 모양 그리고 색깔이 수수하면서도 독특한 탓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를 새길 수 있어서이다. 채송화는 꽃집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빨강, 파랑, 노랑, 하양, 분홍 등 가지각색의 꽃을 피울 줄 안다. 채송화는 향기가 없지만 아주 맨질맨질한 작고 새까만 씨앗들을 터질듯이 한 모듬씩 안고 있다. 더더욱 채송화가 매력적인 것은 화분에 담아 사무실 창가에 둔다 하더라도 왠지 모르지만 잎만 무성할 뿐 예쁜 꽃들을 절대로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썼을지라도, 땅 바닥에 기듯이 바짝 붙어 피더라도, 채송화는 햇볕을 바로 받는 바깥 양지바른 곳에서만 자기 꽃을 제대로 피운다. 

 

    봄꽃들은 꽃샘바람과 추위가 나무들을 흔들고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만개한다. 흔들어 주어야만 정신이 번쩍 들어 꽃을 피워야 할 계절이 왔음을 나무 스스로 느끼는 것일까? 봄꽃들은 하나같이 꽃들이 먼저 피고 꽃이 진 다음에야 잎이 돋는다는 특징이 있다. 화려한 꽃잎으로  맘껏 자신을 표출한 뒤에 이제 또 한 해를 진지하게 살아갈 일상을 찾아가는 것일 게다. 봄꽃들은 대부분 슬픈 전설 하나씩을 동반한다. 진달래가 그렇고 자목련과 백목련이 그러하며 분꽃이 그렇다. 그리고 시인들이 노래하는 시들은 대개 봄꽃들임에 틀림없다. 봄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묘한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봄꽃들은 향기를 갖지 못한다. 아마도 아직 4계절의 순환을 골고루 경험하지 못해서이다. 인생을 꽃에 비겨 이야기 한다면 말 그대로 꽃다운 나이를 지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이런 봄꽃에 해당한다. 이런 저런 말 한 마디에 온 일생을 흔들어 자기 나름대로의 꽃을 피우는 시기, 꽃을 먼저 피우고 싶어 안달이 나는 시기, 온 세상의 고민과 슬픔을 제 한 몸에만 지닌 듯이 신화와 전설, 그리고 아픔과 눈물이 많은 시기, 하룻밤 새에 기나 긴 소설을 쓰기도 하고 시인이 되어 시를 읊어대기도 하는 시기, 아니 소설이요 시 자체가 되는 시기, 그럼에도 인생의 맛이나 멋을 담은 향기는 없는 풋풋한 시기, 바로 이런 시기가 청소년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꽃과 같은 우리 애들에게 나 자신을 포함한 어른들이 하는 짓을 가만히 보면 마치 죄다 장미이고 백합처럼 비싼 꽃, 시장에 내다 놓아 잘 팔리는 꽃만 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여 질 때가 많다. 백합이 절대로 채송화가 될 수 없고 채송화가 결코 백합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자신이 백합이지 못했던 처지를 애통해 하면서 애들만이라도 기어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오기일까? 그런 것이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것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사실 어른들이 애들에게만 그런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른들은 자기들끼리도 서로 그런 억지를 부리는 것만 같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 화두가 되어있는 소위 양극화의 해법과 개혁을 놓고도, 그 누구도 서로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미성숙함, 상호간의 배려 부족을 스스로 성찰하려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개혁은 채송화를 백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백합을 채송화로 만드는 것도 아니며, 자신의 솔선수범과 희생, 그리고 소박한 결심과 실천들을 먼저 요구한다. 백합을 기어이 채송화로 만들어야만 속이 시원하겠다는 듯이 우기는 것은 우격다짐이요, 고집불통이며 오만이다. 그런 식의 이른 바 개혁은 개(犬)혁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