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

불안과 우울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1.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닥쳐올 미래를 두고 걱정하시며 특별한 당부를 하신다.
  
미래에 대한 염려를 불안이라 하고

과거에 대한 집착을 우울이라 한다.
불안이나 우울은 긴장과는 다르다.

불안은 없애야겠다고 작정하면 자꾸 튀어 오르면서 증폭되는 속성을 가진다. 불안은 내 밖의 믿는 구석이 못미더운 상황이 되어 스스로 하게 되는 자기 협박이다. 불안은 현재가 감소될 때에 자꾸 커진다.

생기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불안의 전형적인 예가 바로 건강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먹으면 어떻게 될 것이고, 저것을 먹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 때문에 현재가 없어진다.

불안은 경험에서 나온 예측이고 정보일 뿐이므로,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므로, 그저 그대로 두어 참조할 뿐이다.

우울은 부정적인 체험에 사로잡혀 매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노, 근심, 두려움, , 슬픔 같은 것들이 겹쳐서 작동한다. 자꾸만 눕고 싶고, 잠은 오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밖에 나가기가 싫어진다. 우울은 내 안의 자존을 회복하지 못하는 자기 소외이다.

우리는 과거의 상념에 집착하고 오늘의 현실을 대하면서도 유령을 보듯이 그렇게 보려 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대함에 있어서는 건널 수 없는 심연으로, 그 깊은 구렁이 끊임없이 우리를 두렵고 떨리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도 그러하였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거듭 지금 현재의 나를 만져보고 믿으라 하셨다.(참조. 루카 24,28-39)

우리는 지금 여기의 현재를 살아야 한다. 지금 현재의 양식良識으로 오늘을 채워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에야 우리의 아픈 과거는 새로운 생명에로 나아가는 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불교식으로 말하면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의미로 과거는 새로움에로 나아가는 문이다. 그리스도의 살과 뼈, 그리고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보고 그 상처가 마침내는 제자들이 살아가는 유구한 역사 내내 교회의 삶의 양식이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살과 뼈라는 양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로부터 탈출하여 영광에로 부름 받은 복된 처지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픔과 상처는 시간을 두고 싸매 보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과거를 뛰어넘어 현재에 더욱 투신해야 한다. 물론, 때로는 전문가의 자상한 손길을 필요로 할 때도 있다.

다가오는 미래는 현재가 되었을 때에 걱정하기로 하고, 지나간 과거는 그대로 과거이라 하면서, 현재에 성실해야 하고 현재를 기쁨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우리의 그 모든 환난에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2코린 7,4) 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현재를 기쁨에 넘쳐 살아야 한다. 너와 나의 기쁨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누군가의 기쁨을 훼손하고 망가트리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그만 두고, 그러한 못된 심보를 버려야 한다.

연약한 나를 위해 은총을 부단히 기도하면서
믿음을 강화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지나온 시간들

지나온 시간들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서

과거를 두 편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한 편은 감사해야 할,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되어졌으면 좋을,

그런 은혜로운 순간들이고,

또 한 편에서는 잊어버려야 할,

아니 어쩌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잊어버리고 싶어지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법한 체험의 시간들이다.

 

감사하며 은혜 속에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과거들,

좋았던 순간만큼이나 나빴던 순간,

그리고 기뻤던 때만큼이나 슬펐던 때까지도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지금 내가 서있는 현재의 이 자리에

우리를 있게 했던 지나온 모든 순간들을

우리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이라 이름 지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온 과거가

그런 대로 괜찮았었다고 자위하자는 말은 아니다.

또 그저 잊어버리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현존을 벗어나 이루어진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하여야 된다는 것이며,

이는 지난날과의 용서요 화해를 뜻한다.

 

이처럼 우리의 지나온 순간들을

은총의 빛 안에 옮겨놓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심지어는 부끄럽고 죄스러웠던,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법한 일들까지도

하느님의 눈으로 보겠다고 결심하고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깊이 깨닫고,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이란 것이

하느님께 연결되어 진 것임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과정을 살아야 하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