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

어릿광대

이 세상을
한 판의 거대한 서커스 장이라고 하자.
이 서커스 장에는 스타들도 있고 광대들도 있다.

이 서커스 판에서 중심은
당연히 명연기로 박수갈채를 받아내는 스타들임에 틀림없다.

반면에 광대들은 무대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그들은 스타들 사이에 막간을 통해 등장하고
실수와 떠듬거리는 말 짓, 몸짓으로 우리를 몇 번이고 웃게 만들어 준다.
광대들은 스타들의 명연기 때문에 생겼던 긴장을 풀어 준다.

우리는 광대들을 만날 때
감탄이 아닌 공감으로,
놀라움이 아닌 이해로,
그리고 긴장이 아닌 웃음과 미소로 만난다.

스타와 광대 쪽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야 할 쪽은 분명 광대 쪽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스타중의 스타가 되셔야 되는 분이시고
우리는 누가 뭐래도 광대 쪽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명연기에 감탄하고, 환호하며, 긴장하고,
그 뒤를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몸놀림에는 그저
공감으로, 이해로, 웃음과 미소로 바라보아 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고 살아가야 할 바인 것이다.

책으로 치자면
예수님은 앞표지 우리는 뒷표지,
예수님은 문장과 내용 우리는 글자라는 기호들에 불과하다.

광대들은 인간사의 수많은 염려와 걱정,
긴장과 불안이 웃음과 미소를 필요로 하고
결국은 우리 모두 역시 광대라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어릿광대들이 참 많다.
눈물로써 미소를 감추고
미소로써 눈물을 감추어야만 하는 어릿광대들,

그들은 내 얼굴 위의 하얀 광대칠을 지우려 애쓰지 말고
오히려 덧칠해야만 한다고
나를 부추긴다.

 

내가 만난 헨리 나웬 신부

 

내가 만난 헨리 나웬 신부




<로마의 어릿광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5년, 그러니까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외국 땅, 이태리의 로마에 도착했을 때였다. 때는 6월이었기에 이미 학교의 기숙사는 텅 비어 있었고 나는 10월 학기의 입학을 위하여 아무도 없는 캠퍼스에서 정말이지 엉덩이에 솟은 땀띠가 짓물러 터지도록 앉아 인내롭게 이태리 말을 공부해야만 했던 때였다.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 있던 내가 우스꽝스럽게라도 보였던지 뽈 반루펠렌 이라는 벨기에 국적의 한 친구가 뒤늦게 여름방학 휴가를 떠나면서 “Clowning in Rome(로마의 어릿광대)” 라는 영어로 된 책 한권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책이 그 저자인 헨리 나웬 신부님과 내가 만난 첫 번째 만남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내에 이봉우 신부님께서 번역하셨던 “상처 입은 치유자” 라는 책이 이미 있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로마의 어릿광대” 라는 책의 제목에 나의 처지를 견주면서 그 제목 때문에 읽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말을 배운답시고, 또 공부를 한답시고 그런 꼬락서니를 하고 있던 내 상황이 마치 광대짓 같이 여겨진 때문이었다. 제목 때문에 펼친 책이었지만 서문의 둘째 페이지 ‘광대’부분을 읽으면서 난 곧장 이 책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대목의 내용은 이랬다.


   


   “서서히 나는 이곳 로마에 맹수들, 조련사들, 신기한 묘기로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수많은 곡예사들, 그리고 실제적이고도 진실된 얘깃거리를 전해주는 어릿광대들이 어우러져 거대한 서커스가 한 판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광대들이 무대의 중심에 있지는 않는다. 그들은 스타들 사이에서 막간을 이용하여 등장하고  실수와 떠듬거리는 말 짓으로 우리가 경탄해마지않았던 대스타들의 명연기 때문에 생겼던 긴장 후에 우리를 몇 번이고 웃게 만들어준다. 광대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들이 하려고 하는 것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어딘가 서툴고, 균형을 잡지 못하는가 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다. 허나 그들은 우리 편이다. 우린 광대들을 대할 때 경탄이 아닌 공감으로, 놀라움이 아닌 이해로, 그리고 긴장이 아닌 웃음과 미소로 만난다. 우리는 그들이 뭐 하나라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곧잘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광대들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도 같이 보인다. 광대들은 우리 모두가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고 있음을 서로 공감하게 하고, 그래서 눈물과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 이 세상이 한판 서커스 장이라고 한다면 그 서커스 장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스타 쪽일 것인가, 광대 쪽일 것인가? 우리의 주님께서 대스타이시고, 또 대스타이셔야 하는 분이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광대 쪽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명연기에 감탄하고 환호하며 긴장하고,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 어줍지 않은 신앙인들의 몸놀림에는 그저 공감으로, 이해로, 웃음과 미소로 우리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고 살아가야 할 바인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