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계절


기다림의 계절


 


겨울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계절은 동지를 기준점으로 점점 길어져 갈 해를 기다리고, 따뜻함을 기다리며, 푸른 잎들과 꽃들을 기다린다. 우리네 삶 역시 존재론적으로 끊임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실업자는 취업을 기다리며, 학생은 졸업을 기다리고, 군인은 제대를 기다리며, 환자는 완치를 기다리고, 이국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는 귀국을 기다리며, 가게의 주인은 손님을 기다리고, 자꾸 시계에 눈이 가는 사람은 퇴근을 기다리며, 직장인은 아랫사람 부려볼 수 있는 승진과 있는 것보다는 없어서 더 나을 상사의 증발을 기다리고, 행복했던 느긋함의 기억은 다시 해를 바꾸어야만 다가올 휴가를 기다리고, 정류장에서는 버스가 어서 와주기를 기다리며, 애들과 부산을 떨며 저녁나절을 보내는 주부는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고, 집나간 자식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자식의 무탈 귀가를 기다리며,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서민들은 이제는 좀 괜찮다는 생각과 말을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기다린다며 우리에게 달려와 우리의 생각과 시간들을 끌어가려고 안달이 난 것들도 천지다. 길에서 나누어지는 명함과 전단지, 고집스럽게 집 앞 대문에 붙여지는 홍보물들, 교묘하게 나의 e메일에 쏟아져 들어오고 나의 전화기에까지 파고 들어와 내 시선과 귀를 잡아당기는 소리들, 해가 지면 휘황찬란한 원색으로 온갖 교태를 부리며 나에게 유혹으로 다가오는 광고간판들과 쇼 윈도우들, 보고 싶거나 듣고 싶지 않아도 억지를 부리면서 공짜인 것처럼 여러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 도대체 기다림은 무엇이고,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숙명이 어차피 기다림 속에 이어지는 삶이라면 그 기다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세상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여 사뭇 신경질을 부린다. 소위 제철 음식이니 식품, 과일들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고, 즉석 자판기로 그 자리에서 욕구를 충족해야 하며, 디지털카메라로 뭐든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고, 순간의 클릭으로 편지와 문서들이 오가며, 애들이 이성간에 만나 손을 잡는 시간의 단축으로는 시대의 놀라운 진보와 세대 차이를 가늠하고… 신호가 바뀌어도 움직이지 않는 앞 차를 기다리지 못하여 ‘빵’ 하고 눌러대는 데는 평균 0.7초가 걸린다고 했던가? 사실 우리는 ‘빨리빨리’의 왕국이라고 스스로를 으스댄다. 현대인들은 조바심과 지루함 속에서 기다림을 어려움과 불쾌함으로 체험하기 일쑤이다. 기다림이 지나쳐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이 심해지면 극단적인 좌절과 자포자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다림이 어려운 까닭은 현재의 처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깊으면 깊을수록, 또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다림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 어려움 속에는 뭔지 모를 막연한 실체에 대한 내적인 두려움, 타인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있다. 어떤 해로운 것이 덮쳐 와 나를 해치고야 말 것 같다는 두려움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무엇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는 내 안에 공격적인 발톱을 세우게까지 한다. 적자생존의 논리 아래 도태될 것은 스스로 없어져야만 한다는 시대, 전진이 아니면 퇴보요 새로움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시대, 효율과 수익률의 수치로만 말할 뿐이라는 시대의 각박한 사람들에게는 한 시간, 하루, 한 해의 기다림이 너무 힘들다. 하늘아래 새롭거나 대단한 것, 바랄 것이 없으니 기다릴 것 또한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냉소주의, 자기도취, 그리고 모든 것을 그저 따분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태도에 불과할 뿐이다.

새로운 해를 기다리면서 가슴 설레는 기대감 속에 진정으로 기다려야 할 내용들을 새롭게 만들고 정리해 본다. 그렇지 않으면 신문기사나 드라마, 한번 재미있다가 잊어먹고 마는 파편들을 찾아 헤매거나 순간적인 쾌락의 유혹에 빠질 수 있고, 마음의 감수성이 메말라 올바른 인생길과 그렇지 못한 것을 식별할 능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2007년 12월 15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