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記憶

사람마다 기억의 저장고에서 꺼내는 것들이 어쩜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도대체 ‘기억記憶’은 무엇일까?

‘기억’의 ‘기’는 ‘기록할 기記’이다. ‘기록할 기記’는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과 음을 나타내는 ‘몸 기己’가 합하여 생긴 글자이다. ‘말씀 언言’은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서 ‘매울 신辛’이라는 글자 밑에 ‘입 구口’가 붙어 있는 형상이므로, ‘매울 신辛’이 창이나 꼬챙이의 형상이고 보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상대방에게 곧장 날아가거나 날카롭게 가서 꽂히는 것이다. 그리고 ‘몸 기己’는 사람이 꿇어앉거나 몸을 굽히고 있는 형상, 혹은 구불구불한 끈 같은 것이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말씀 언’과 ‘몸 기’를 합해서 함께 정리하면, ‘기록할 기記’는 사람들 입에서 나가 상대방을 찔러대고 아프게 한 말들, 얽히고설킨 인간사의 굽어지고 산만한 것들, 뒤섞인 것들을 꿇어앉아 가지런히 적고 펴서 정리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는다.

나의 기억을 적었다고 해도 그것은 너의 기억과 전혀 딴 소리가 되기도 한다. 인생사에서는 왕왕 나의 소중한 기억들이 상대방에게 다 다른 말로 적혀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다음에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그 기억의 다른 끝을 발견할 때는 놀란다. 내가 가늠할 수 없었던 섭리의 오묘함, 기어이 나에게 와 닿아야만 했던 그때 그 일의 끝이 여기란 말인가 하게 될 때는 말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현재·미래라는 구분으로, 연월일, 시분초로 끊임없이 쪼개지고 결국은 소멸되어 ‘시간’이라는 것이 본성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기억이라는 것이 현재의 찰나요 순간일 뿐이라 하더라도, 그럴 땐 그저 눈물이 난다. 말을 해버리면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너와 나의 인연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해오다가, 너무 미워서 내 마음 속에 혼자 기억해놓기로 했던 것들을 막상 말해놓고 나면 그래서 후회가 된다.

‘기억’에서 뒷 글자인 ‘생각할 억憶’은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㣺 마음, 심장)과 음을 나타내는 ‘뜻 의/기억할 억意’이 합쳐진 글자이다. ‘의/억意’이라는 글자는 또 ‘소리 음音’과 ‘마음 심心’의 합자이니 마음에 있는 것이 소리되어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의/억意’을 만드는 윗부분 ‘소리 음音’은 ‘말씀 언言’의 ‘입 구口’ 속에 ‘하나 일一’을 더한 모양으로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 노래 부르거나 외우거나 하는 소리에 곡조를 붙인 것이다.

언言, 음音, 의/억意은 말, 소리, 뜻으로 점점 발전한 모양새다. 이는 모두 주술 통 같은 모양에서 나온 글자들이라 하기도 하여 주술사들이 주술 통에 뭔가를 넣고 흔들어대면서 나는 소리를 바탕으로 생겨났다 한다. 사람들은 주술을 통해 깨우친 신의 뜻을 헤아려 생각하고 마음에 담고 말하며, 소리 내고, 뜻을 새긴다.

목구멍 속에서 나는 소리, 뚜렷한 말이 되지 않는 음성이 ‘기억할 억’이 되어 마음에 단단히 눌러 새겨진다. 마음에 눌러 쓰는 것이 ‘억憶’이다. 그래서 memory이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에게 눌러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과 영혼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느님에게까지 도달하는 여정을 ‘기억’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