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엽, 땅 이름 섭, 책 접葉

‘(나뭇)잎 엽葉’은 ‘풀 초艹’ 더하기 ‘인간 세世’ 더하기 ‘나무 목木’으로 구성되었다. 한가운데 ‘세상/인간 세世’를 품고 있는 글자이다. 나뭇잎을 가리키는 葉보다 枼이라는 글자가 먼저 쓰였는데, 이 글자보다도 먼저 나뭇잎을 가리키는 글자는 ‘世’라는 글자였다. ‘世’라는 글자 자체가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순이나 잎사귀를 본떠 만들어진 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나뭇잎이 나고 지는 것은 곧 해가 바뀌는 것이어서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는 ‘생애’의 뜻으로 점점 발전되어 일생이나 세대라는 뜻으로까지 나아간다. 같은 글자이지만, 온전히 인간이나 일생, 생애를 뜻하는 글자로는 ‘인간/대 세卋’라는 글자로 구별하여 쓰기도 한다. 이 글자는 ‘열 십十’이 세 개 겹쳐진 의미로 대략 30년을 한 세대로 지칭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世’가 본래 뜻인 나뭇잎을 잃을 수 있으므로 그 글자 밑에 ‘나무 목木’을 붙여 ‘나뭇잎 엽枼’을 만들었다가 그 글자 위에 ‘풀 초艹’까지 더해 오늘의 ‘나뭇잎 엽葉’이 되었다. 이는 보통으로 나뭇잎, 꽃잎, 잎처럼 얇은 종이 같은 것, 책의 쪽, 동전을 세는 단위 등으로 쓰이고 ‘중엽中葉’에서처럼 한 세대나 시기를 뜻하기도 한다.

잎은 놀이개다. 백 보나 떨어진 거리에서 쏜 화살의 과녁이 된 버들잎(백보천양百步穿楊)이 있고, 나뭇잎을 가르는 검劍이 있으며, 애들이 한 장 한 장 떼어내며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어서이다.

잎은 가리개다. 첫 인간의 부끄러움을 가렸던 무화과나무 잎, 비오는 날 머리를 가리는 연잎, 당唐나라의 양옥환楊玉環이 손으로 건드렸더니 당해낼 수 없는 미모 앞에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려 자신을 숨겼다는 함수화含羞花 때문이다.

잎은 치장이다. 여러 색의 꽃잎으로 즙을 짜 굳혀 만든 연지臙脂로 뺨에 홍분紅粉을 칠했다는 복숭아 꽃잎이 있고 즈려밟고 가시라는 꽃길이 있어서이다.

잎은 대비對比이다. 한 송이 붉은 꽃을 돋보이게 하는 푸른 잎들이 있으며(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 한해살이풀이지만 푸른 물감의 원료가 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의 쪽잎 때문이다.

잎은 계략이다. 벌레가 좋아하는 꿀로 역모逆謀의 글을 써서 역사를 바꾸어가던 음모陰謀의 나뭇잎이 있어서이다.

잎은 낭만이다. 연서戀書와 시詩의 바탕으로 붉게 물든 감나무잎(시엽지枾葉紙)이 있고, 노란 은행잎으로 덮인 길을 가는 연인의 팔짱 낀 모습이 있어서 그렇고, 이른 아침 이슬 맺힌 풀잎이 있기 때문이다.

잎은 세월이다. 섬돌 앞에서 가을을 알리는 오동나무 잎(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이 있어서이다.

잎은 거름이요 순환이다. 온갖 것을 말없이 받아들여 쌓이고 쌓이다가 버무리고 뒤섞이며 밟히고 썩어 생명을 낳는 거룩함을 담았기 때문이다.

잎은 먹거리다. 온 세상 언제 어디라도 한국인이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있어서 여름 맛을 주는 깻잎과 상춧잎과 고춧잎을 비롯해 가난한 시절 뒷동산에만 오르면 누구나 캘 수 있었던 백여덟 가지나 된다는 나물 잎들이 있어서이다.

잎은 한恨이다. 망망대해에서 한 잎의 좁은 배를 탄 좁쌀 같은 인생살이의 슬픈 일엽편주一葉片舟와 그 위의 술잔이 있고, 빈산 잎이 지고 비마저 부슬부슬(권필權韠·1569~1612년 : 공산목락우소소空山木落雨蕭蕭)대는 시가 있으며,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하던 민요가 있기 때문이다.

잎은 사유와 성찰이다. 꺾이고 구부러지며 잎새의 폭이 풍성하고 수척해지는 변화와 반복 속에서 마음을 속이지 않고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으로만 그릴 수 있고 결코 남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난초의 잎이 있어서이다.

잎은 향이다. 덖고 우려 즐기는 찻잎과 선禪이기 때문이다.

잎은 길이다. 9년 동안 좌선하신(면벽좌선面壁坐禪) 달마대사를 동쪽으로 모셔 온 갈댓잎(노엽달마蘆葉達磨), 그리고 그 달마대사께 향기로 움직이는 동쪽의 땅을 펼쳐준 다섯 장의 꽃잎(오엽분피진단개五葉芬披震旦開-震旦:동쪽의 땅)이 있으며, 비가 거센 4월 어느 날 작은 벚꽃잎들로 하얗게 뒤덮인 길이 있어서이다.

잎은 죽음이다.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유일하게 사람이 이승을 떠나는 장례식을 송별하면서 죽음의 신비처럼 많은 꽃잎으로 자신의 속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 국화꽃 잎이 있기 때문이다.

숲에 들었더니 헤아릴 수도 없는 모든 잎이 하나도 예외 없이 전부 각자 자기 자리를 잡았다. 햇빛은 잎을 헤치고 감히 들어올 수가 없어졌으며 잎들 사이로 간간이 바람과 더불어 즐거운 숨바꼭질을 할 뿐이다. 위로는 새들이 가지를 바꾸고, 밑으로는 다람쥐들이 부스럭거리느라 바쁘고, 저만치서는 사슴들이 가끔 경계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가만히 쳐다본다. 친구에게는 곧잘 모습을 보여준다던 갈색과 회색 여우는 야속하게도 좀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