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볼 일이 있어 외출을 했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전남 광주에 있는 예순 일곱의 홀로된 누나이다. 감기 걸린 듯이 목소리가 이상해 왜 그런가하고 물었더니 징징 운다. 독자 집안에 출가해서 아들을 셋이나 낳아 남부럽게 출가까지 시킨 누이이고, 며느리며 자식 후손들까지 요새 사람들 같지 않다는 효자 효부 효손들 소리를 주변으로부터 듣는 것이고 보면 복을 많이 받은 누나인듯도 싶으며, 정년까지 큰 변고 없이 잘 지내시던 매형이 정년 후 1년 반만에 다소 이기적인 듯도 싶을만큼 야속하게 누나만을 남기고 떠난 뒤에도 아들들 덕 볼 것 없다고 용감하게 혼자 잘 사는가 싶었던 누나이고, 방광암에 걸려 어려운 수술을 여러 번 해야했던 누나이며, 그럼에도 지방에 뚝 떨어져 혼자서 잘도 사는가 싶던 누나였는데 해가 뜬지 한참이나 지난 아침 10시가 된 뒤에야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로 울어댄 것이다.




사연인즉슨 방광암에 걸린 사람들이 흔히 하는 수술 뒤 오줌 주머니를 차고 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누나인데 가끔씩은 그 오줌 주머니라는 것이 잘못되어 터지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도 집에서 혼자 있다가 그런 일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깔끔을 떨고 남에게 행여 흐트러진 모습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누나 성격에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문득 스스로 처량해지고 ‘내가 이렇게 살고있는 꼬락서니가 뭔가?’하는 외로움으로 범벅된 서러움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밥도 안 먹고 10시까지 혼자 꺼억꺼억 울다가 당신 말에 의하면 아무 곳에도 전화 할 데가 없어 나에게 전화했더란다.




밖에 외출을 하여 누군가와 긴한 얘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전화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참 난처한 지경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20여분 통화를 하면서는 더더욱 난감한 상황이 되었는데, 이는 도대체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른다는 내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먹고 죽은 뭐는 떼깔도 좋다는데 우선 밥이나 먹고 우시면 어떤가?’ 하는 말을 한 것이 전부였고 그 말에 누나는 가까스로 울다가 웃으면서 ‘알았어. 그럼 밥이나 먹을라네.’ 하고 눈물을 훔쳤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싶어진다.


결국 인생이란 것이 혼자이고 마는 것인가 싶어진다.


세상을 등진 것이 아니요,


세상을 선택한 것은 더더욱 아닌


소위 수도자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인가 싶어진다.


마음 저 밑바닥 고요한 곳에서


고독의 자아와 나름대로 처절하게 직면할 수 없다면


인생은 끝내 공허한 가면이고


외로운 환상이며


우스꽝스러운 허세이거나


무기력한 염세일 뿐인가 싶어진다.


누나는 아마도 지금 결코 외로움만은 아닐,


이런 고독의 과정을


언뜻언뜻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보다. (200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