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띠 해

 

말띠 해




뱀의 해가 가고 말띠 해가 온다.


말은 애초에 풀밭에서 풀먹고 살던 동물이고, 사람들이 먹는 고기이며, 경마장의 도박꾼이기도 하면서, 전쟁터의 전차 앞잡이이고, 짐을 싣고 끌며 등에 져야하는 노예이며, 창과 칼을 든 무사의 폼잡이이고, 같이 어울려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델이며, 둘만의 로맨틱한 여행에 동승하는 동행이고, 승마장에서 돈 있는 사람들의 소일꺼리이며, 무던히도 채찍과 뒷꿈치에 채이는 맷집이고, 가죽이니 털이니 부위별로 나뉘어져 버릴 데 없이 그 몫을 마지막까지 다하는 부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말은 사람들과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했고, 또 그렇게 지금도 하고 있다. 문득 말띠 해이기에 음력으로 따져 팔자 사나울까봐 이리저리 피해 아이 낳는 계획을 세워야 하겠다던 영악한 젊은 아낙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말을 생각하면서도 불현듯 사람이 무서워진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 으레껏 사람마다 해 보는 생각들은 거기서 거기이고 나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불 깡통 하나 양지쪽에 놓고서 하늘을 괜스레 올려다보면서 해묵은 태울 꺼리들에 불을 붙여본다. 사실 이렇게도 순식간에 타버리고 마는 것을. 그래 언제 어떻게 쓸 요량으로 그렇게도 붙잡고 보관하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부질없는 집착이었고 미련들이었다. 모레 둔덕에 애써 바람을 의지하면서 그 동안 주고받았던 명함들과 주소록을 태우며 썼다던 사막에서의 편지가 스친다.




굳이 축복을 청할 것도 없이,


이미 주신만큼 그만큼,


그 몫이라도 다할 수만 있다면 하는 소리 없는 바램 속에서,


어줍잖은 우매함들일랑은 이미 생각지도 않고 계실 그 님이련만,


행여라도,


그저 그냥 웃어주십사 하고 빌어본다. (200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