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pilgrim

‘순례자’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 ‘pilgrim’이라는 말은 라틴어 ‘페레그리누스(peregrinus)’라는 단어에 기원을 둔다. 이 말은 ‘페르per'(=through) + ‘아게르ager'(=field, country, land)로서 외국인, 낯선 이, 혹은 여행자나 일시 거주자 등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 대중 라틴어에서는 히브리말의 ‘gur'(גּוּר=sojourner, <거주자)나 그리스말의 ‘parepidemos'(παρεπίδημος=temporary resident, <일시 거주자)를 ‘peregrinus’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이 말은 4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리스도교 안에서 ‘거룩한 장소’를 방문하는 소위 ‘성지순례자’라는 뜻을 더했고, 나아가 종교적인 목적의 여행자까지도 포괄적으로 아우르게 된다.

『순례자는 집과 고향과 조국을 떠나 걷는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걸음은 예수 그리스도 따름을 더한다. 따름은 ‘떠남’, ‘길 위에 있음’, ‘이방인’, ‘목적지를 향함’이다.

‘떠남’은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떠남이고, 인연을 떠남이며, 과거의 나로부터 떠남이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떠남이며, 지나가 버릴 것으로부터 떠남이고, 기억으로부터 떠남이며, 알려진 것들로부터 떠남이고, 내가 지었던 말의 집으로부터 떠남이어서 침묵이자 의식적인 고독이며, 인정·반응·평가를 떠남이고, 걸음에 나를 맡김이다.

‘길 위에 있음’은 떠돌이요 방랑이다. 머리 둘 곳이 없음을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며, 내가 걸어서 나에게 다가오고 마주 오는 것을 맞으려는 희망이고, 땅의 거처가 아닌 하늘의 거처를 꿈꾸는 기대이며, 계속 걸어 깨끗해지는 정화이고, 내 몸이 땅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단조로움의 반복으로 찾는 고요이며, 걸음마다 거듭 달라지는 나의 변모이고, 걸을 때마다 내 앞을 질러나가 뻗는 요원함이다.

‘이방인’은 여럿으로 지어진 공동체 안에서도 혼자로 남고, 죄와 이기주의의 땅을 벗어나 덕의 땅으로 들어가며, 종국에 도달할 고향을 노래함이다.

‘목적지를 향함’은 내가 밟는 발밑의 땅이 밟을 때마다 점점 사라지는 것을 아는 것이고, 점점 뚜렷이 보는 것이며, 이유·의미·목적이 분명해지는 것이고,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음이다.(참조. 안셀름 그륀, 길 위에서Auf Dem Wege, 분도, 2020, 2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