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배輩

오랜만에 한강을 건넌다.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며 계절이 바뀌는 천기天氣를 알린다. 새들이 무리를 짓는 것은 ‘모일 집集’이다. 나무 위(나무 목木)에 새(새 추隹)가 올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땅에서 올라오는 것들의 표상인 나무 위에 새들이 앉고 거기에 둥지를 튼다. 그러나 새들은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는 하늘의 전령이고 징조의 표상이어서 날개를 지니며, 꼭 알려야 하는 소리일지라도 혼자인 소리가 너무 외로운 독백일 뿐이고 힘이 없어서, 함께 모여 무리를 짓는다. 떼지어서 모이는 새들은 ‘새 떼지어 모일 잡雥’으로 쓴다.

인간이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무리 배輩’이다. ‘아닐 비非’와 ‘수레 거/차車’라는 글자가 모였다. 非로 구성된 글자들은 ‘나란하다’와 ‘어긋나다, 아니다(위배)’의 두 가지 뜻인데, ‘무리 배輩’에서는 새의 양 날개가 나란히 펼쳐지듯 ‘나란하다’이다. 그래서 ‘무리 배輩’는 양쪽으로 나란히(非) 줄지어 선 수레(車)의 대열이다. 전차를 나란히 세워 떼지어 출정(出征)하는 무리, 동지, 같은 편이다. 새의 무리는 소식을 알리지만, 글자대로라면 사람의 무리는 이처럼 공격성을 담았다.

후배後輩는 뒷세대이고, 선배先輩는 앞세대이며, 연배年輩는 또래이다. 모리배謀利輩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이나 무리이고, 간상배奸商輩는 간사한 방법으로 이익을 보려는 장사치의 무리이다. 불량배不良輩도 있고 폭력배暴力輩도 있으며, 정상배政商輩라는 말도 있으니 ‘무리 배輩’에는 긍정보다 부정이 더 많은 듯하다. ‘무리 도徒’라는 글자도 있는데, 이는 ‘조금 걸을 척彳’과 ‘달릴 주走’라는 글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이 글자는 원래 뜻을 나타내는 ‘조금 걸을 척彳’과 ‘발 지止’가 합해진 ‘쉬엄쉬엄 갈 착辵(=辶)’에 ‘흙 토土’가 더해진 글자로 흙먼지 쓰며 걸어간다는 뜻을 담았다. 그렇게 ‘무리 도徒’ 역시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 무리이고 같은 뜻을 가진 한패이다. 같은 길을 가며 함께 도를 닦는 좋은 벗은 ‘도반道伴’이라 하지 ‘도반徒伴’이라 하지는 않는다.

사람 무리를 가리킬 때 ‘무리 중衆’을 쓰기도 한다. 이 글자는 본래 眾으로 썼는데, 간결하게 众으로 쓰기도 했다. 眾이라는 글자는 원래 ‘날 일日’ 밑에 사람(人)이 셋이어서 뙤약볕 아래에서 무리 지어 힘든 일을 하는 ‘노예’들이었는데, 日이 ‘눈 목目’으로 바뀌면서 누군가의 눈 아래 감시당하는 노예들이 되었다. 그렇게 인간의 무리는 감시의 눈 아래 호구지책으로 땀 흘리는 대중大衆이다. ‘임금 君’과 ‘양 양羊’을 더해 임금이 지팡이로 명령하며 양 떼를 치는 모습으로 ‘무리 群’이라는 글자도 있으니 이래저래 인간의 무리는 대개 감시하는 눈과 호령하는 지팡이 아래 시달리는 피지배 민중民衆이다. 역사와 시간 속에서 피지배를 견딜 수 없어서, 민중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하늘의 소명을 빙자하며 무리를 짓는 정당政黨도 있다. 이때 ‘무리 당黨’은 ‘검을 흑黑’이 의미부이고 그 위에 올라앉은 ‘오히려 상尙’이 소리부인데, ‘검을 흑黑’은 신선하지 못하고 썩은 것이므로 ‘무리 당黨’에는 애초에 정의正義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무리 짓고 편을 갈라 썩은 무리라는 뜻이 담겼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가 많고, 하류의 무리가 천지이며,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리, 몹쓸 사람의 무리가 많다. 참새나 제비 같은 작은 무리가 봉황 같은 큰 무리의 뜻을 알 리 없고, 마르고 굳어지는 죽음의 무리가 부드럽고 연한 생명의 무리에 견줄 바도 못 된다. 하느님은 한 분이신데, 사람들은 살기 위해 무리를 짓는다고 하면서 대개는 지배하기 위해 물거품이 될 무리를 짓는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의 무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시편 14,5)을 주님으로 모시면서 “죄인들의 무리에 끼는 것”(집회 7,16)을 경계하며, “나를 거슬러 둘러선 수많은 무리 앞에서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시편 3,7) 하고, “불경스러운 자들의 무리는…씨가 마르고 뇌물을 좋아하는 자들의 천막은 불이 집어삼켜 버린다네.”(욥기 15,34) 하며, “방자한 자들의 무리를 땅에서 뽑아 버리시고 불의한 자들의 왕 홀을 부러뜨리실 때까지”(집회 35,23)를 기도하고, “기억하소서, 당신께서 애초부터 마련하시어 당신 소유의 지파로 구원하신 무리를, 당신 거처로 삼으신 시온 산을!”(시편 74,2) 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