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생기던 날


태양이 생기던 날

아주 높은 깜깜한 하늘에 별들이 살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어두운 검정 상복만을 입고 있었고
땅은 이 어두움 속을 걷고 있었다.
별들은 가까이 있는 몇몇이서 겨우 몇 마디를 나누다가
곧 무덤덤해지고 깊은 잠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동물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길이 없었고
구름은 그저 하염없이 여기저기를 떠다니고만 있을 뿐이었으며
꽃들은 다른 꽃들이 입은 옷의 아름다운 빛깔을 볼 수도 없었다.
빗방울 역시 도대체 어디에 떨어져야 할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된다며 별들이 함께 모여
자기들이 가진 조그마한 빛들을 모아 큰 빛을 만들어 보자고 결정하였다.
그래서 별들은 서로 서로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하였는데
이로써 수도 없이 많은 곳에서 수도 없이 많은 길을 따라
별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깜깜한 어둠을 가장 자리부터 조금씩 먹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공허한 심연의 어둠 한 가운데로 방향을 잡고
수많은 별들이 검은 창공의 중심에 이르렀을 때
별들은 자기들이 전에 생각하지도 못했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아주 아주 커다란 빛 하나가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그렇게 태양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의 고향과 집이 생기면서
빛의 첫 번째 잔치, 첫 번째 날의 축제가 생기니
세상은 모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보여 들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이 커다란 둥근 식탁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공기였으니
그는 가볍고 긴 망토를 두르고 창공이라 이름하는 친구와 함께 왔다.
그렇게 두 자리가 채워지고 난 뒤에
세 번째 손님으로는 우람한 파도의 축포를 날리며 다가온 바다였다.
이어서 녹색 망토와 잎으로 치장한 숲과 나무가 등장하였는데
그는 꽃들이라는 조용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빛깔을 입은
가족들을 동반하고 있었다.
또한 여러 동물들도 왔는데
그들 중에는 발이 빠른 말이 있었고 충실하기로 소문난 개도 있었으며
힘이 센 사자도 있었다.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는 손님들과 함께 흥겹고 성대한 잔치가 무르익어 갈 무렵
맨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여자와 남자 한 쌍이 도착하였고
이들은 맨 마지막에 도착하였으면서도
잔치의 가장 윗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사랑받는 한 쌍이었다.
그렇게 축제가 진행되고 있던 어느 순간
태양의 크리스탈 궁전에 어둠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도 않았는데
큰 어둠과 작은 어둠들이 손님들 사이를 조금씩 파고들면서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마침내는 태양도 빛을 잃었고
다시 깜깜한 어둠이 되고 말았다.
손님들이 놀라 성급히 자기들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급기야 맨 나중에 도착한 아름다운 여자와 남자 한 쌍만이 남게 되었다.
아무런 두려움도 갖지 않았던 남자는 여자를 꼭 껴안아 주면서
어둠 속에서 멀리 온 세상을 향해
‘바다여, 꽃들이여, 그리고 이 잔치에 오셨던 모든 손님 여러분,
두려워하지들 마시오.
태양은 죽거나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쉬고 있는 것이니
이 밤이 지나면 다시 더 밝은 빛을 내며 떠오르게 될 것이요.’


바로 이 첫날 밤에는
풀들도, 나무들도, 바람도, 바다도 아무도 잠들 수 없었으니
모두가 그 남자와 여자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침이 되었을 때,
태양이 다시 자기의 크리스탈 궁전에서 잠을 깨었을 때,
온 세상은 첫째 날보다 더욱 더 큰 소리로 환호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모두는 밤이 언제나 하나의 꿈일 뿐
그 꿈이 지나면 빛나는 빛의 현실이 다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Janos Pilinszky, 김건중 편역, 2011년2월2일)

기억을 상실한 천사들


기억을 상실한 천사들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이루신 우주의 모든 만물들이 조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여기 저기 바람이 불어 당신 수염을 쓰다듬듯이 은하수를 펼쳐놓은 모습이 하느님의 눈에 뜨였으며,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울려 퍼지는 우주의 교향곡들이 하느님의 귀에 들려왔고, 별들이 저마다 무한의 의미들을 창공에 새기고 있었다.


 그렇게 만물의 경이로움을 보시던 하느님의 눈앞으로 마침 한 무리의 천사들이 지나가게 되었는데, 하느님께서는 거의 본능적으로 눈을 깜박거리게 되셨다. 하느님의 눈꺼풀이 아래로 닫히는 바람에 하느님의 눈앞을 지나던 그 천사들의 무리가 우수수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잠시 전까지도 하느님을 찬미하며 별들 사이를 돌아다니던 천사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불쌍하게도 커다란 공 같기도 하고 과일밭의 거대한 배 같기도 한 혹성의 표면에 떨어진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하고 놀란 별들이 하느님께 묻자 하느님께서는 ‘지구라는 별 이란다.’ 하고 대답하셨다. ‘하느님, 제발 손을 펼치시어 저희들이 다시 하늘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라고 천사들이 청한 후,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에(하느님의 시간으로 ‘잠시’이니 사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너희들이 그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수천 수백 년을 두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내가 응답하려 했었지만 그들이 이제까지 결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직접 사람의 모습을 하고 그들에게 답을 하려고까지 했으나 그것마저 모든 사람이 내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고도 많은 세월이 흘러 수도 없이 많은 우상과 거짓 신들을 섬겨본 터이니, 어쩌면 이제 너희들의 말을 들어줄지 모른다. 내가 몸소 내 모습을 본떠 창조했던 사람들을 찾아가거라. 온 세상 만 백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기쁨의 노래를 가르쳐 주고 그들 하나 하나를 내 마음으로 사랑해 주어라. 이 사명을 다 완수한 뒤에 하늘에 돌아오너라. 그러면 내가 이곳 천상에서 큰 잔치를 베풀어 주겠다.’ 하셨다.


 그래서 천사들은 열심히 온 세상을 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그들이 사랑을 찾을 때마다 기뻐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다니던 천사들을 정작 놀라게 한 것은 이미 그 사람들 중에 많은 이가 자신이 천사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함께 떨어진 천사들이었는데, 땅에 떨어지면서 땅에 머리를 부딪혀 기억을 상실하게 된 때문이었다.


 그 천사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자기들의 마음에 새겨진 내용을 진지하게 살펴보면 자기들이 천사였음을 알 수 있을 터인데도 그러지 못한 채, 하루 일과가 끝나고 자기 집 대문 앞에 앉아 아직까지도 자기 生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고대하며 그저 하늘의 별들만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