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봉헌 생활의 내적인 위기

현대 봉헌생활의 내적인 위기

세상에는, 특별히 가톨릭교회 안에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자신을 이웃과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약속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도 없고,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그 삶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매년 3천명을 넘는다. 왜 그럴까?

첫째는 봉헌생활에 대한 스스로의 정체성과 신원의식의 약화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각기 다른 봉헌생활 형태 안에 담긴 은사(카리스마)에 따라 살아가야할 자신의 신원과 소임에 대해 깊이 공부하지 않아서이다. 지성적인 약화이다. 봉헌 생활자들은 자기가 사는 은사에 따른 자극을 양식으로 산다.

둘째는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에서 그저 매일 매일 단순하게 기능적으로 일을 수행하며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는 봉헌 생활자들의 봉헌된 삶이 진정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지라도, 이를 바라보는 국외자들에게 감동과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봉헌생활은 단순 기능을 수행하는 직업이 아니다.

셋째는 현대 사회를 위한 새로운 생활과 활동모델을 찾지 못하는 방황 때문이다. 수천, 혹은 수백 년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과거의 생활양식과 구조를 버렸으되 새로운 구조를 찾지 못하였거나, 쇄신을 해야 한다면서도 그저 과감한 단절을 이루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오늘을 사는 봉헌생활은 어렵고 힘들다. 수많은 유혹이 닥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러하셨듯이 봉헌 생활자들에게도 확신을 주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 1,8) 하신다.

 

 

수도자들이 짓기 쉬운 죄 세 가지

수도자들이 짓기 쉬운 죄 세 가지

 

봉헌생활을 하다보면

흔히 짓게 되는 죄 세 가지가 있다.

 

게으름, 험담, 그릇된 집착이 바로 그것이다.

 

게으름은

봉헌생활이라는 것이

처자식 먹여 살릴 걱정 없이 살아도 되고

내 입과 생존을 위해 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며

평생을 보장받는 철밥통인 까닭에서 비롯된다.

또 무슨 일을 하건 말건

데드라인이라는 것이 없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

훗날 셈해야 된다는

그럴듯한 명제 뒤에 우선 쉽게 숨을 수도 있고,

수 천 년을 살아온 매일의 일상사라는 매너리즘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삶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험담이란

같은 공동체의 형제나 자매

그리고 이웃 공동체의 형제나 자매들을 두고

칭찬이나 격려보다는

뒤에서 입방아를 찧어대는 행위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인 시기나 질투에

그 뿌리를 둔다.

 

, 어떤 명분으로도

물리적인 폭력이 존재할 수 없는

봉헌생활의 구조 때문에,

소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입뿐인 것이 수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릇된 집착이란

그릇된 애정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다.

크건 작건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이나 상황, 장소, 시간대, 취미거리,

심지어 나만이 아는 은밀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욕구들에 얽매이는 것이다.

부질없는 것들과 하찮은 것들에 대한 집착은

부족과 불만이 있을 때

곧잘 주변에 대한 분노와 공격성을

동반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세 가지 죄들이

수도자들이 짓기 쉬운 죄들이며

어떤 때는 봉헌생활을 그만두게까지 만드는

위험한 죄들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