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더러운 기분

 

나는 오늘 아침 참 더러운 기분이다.


아침 새벽에 눈을 뜨면 TV 보다도 라디오가 이것저것 생각하게 해 주는 여지가 많아 라디오 뉴스를 듣는 버릇이 있는데 경기도 파주에서 부대찌개 재료를 미군부대에서 받아다가 이른 바 ‘원조’를 자랑하는 부대찌개점에 납품했고 그것을 팔아왔더랬는데 그게 글쎄 미군들이 먹다버린 음식 찌꺼기들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찝찔한 기분으로 아침 먹고 신문을 들춰보니 상당히 큰(가로 10cm x 세로 18 cm) 박스기사로 처리된 내용에는 미군부대에서 음식찌꺼기 모으는 사람, 중간 도매상, 식당 주인들이 어우러진 커넥션 아닌 커넥션이 있었다는 것이고 서울 경찰청 외사과에서 6명을 구속이나 불구속입건 했다는 내용이었다. 파주 동두천 의정부등 경기도 다른 지역에도 이런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기사의 말미에는 ‘이들이 찌개재료로 사용한 음식물찌꺼기 중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한 스테이크등도 있었다’라는 말이 친절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그랬다.


옛날 일명 꿀꿀이죽을 먹어야만 했던 전쟁 후의 비참했던 시절이 아닌 2001년도, 그것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0월 서울의 일이다. 영등포 시장에서 이것저것 몽땅 쳐 넣고 드럼깡통에 물 몇 동이 부어서 훌훌 저어가며 끓이고 양은 냄비쪼가리 들고 가서 몇 푼 주고 사먹던 그 때 그 시절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다.




이빨자국이 선명하지 않은 스테이크는 먹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서울경찰청 외사과가 그런 한심한 적발이나 하고 있어야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잇권이라고 팔고 팔아먹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원조가 정말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이 순간에도 자랑스러운 대한의 민족을 외치며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을 팔아먹고 사는 그런 무리들에게, 어쩌면 평생 부대찌개 같은 것은 먹어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그런 무리들에게 이런 부대찌개를 꼭 한 사발씩 먹여보고픈 심정이다.




이건 몇 푼 되지 않는 부대찌개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사회 전반에 걸쳐 왜곡되어, 도대체 있는지조차 모르게 변질되어버린 민족의 자존심문제이고 정체성의 문제이다.




이런 심정이 분노의 심정인지 허탈한 심정인지, 아니면 슬픈 것인지 씁쓸함인지 도대체 정리가 되질 않는다. 여하튼 더러운 기분인 것만은 사실이다.




바로 어제가, 이 나라의 열림을 기념한다던 개천절이었는데…. 어제가 바로 홍익인간의 이상으로 이 나라가 열렸다는 개천절이었는데….


A-썩어질 ! (20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