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사고

 

끔찍한 사고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정말 있어서는 안되고 있을 이유도, 또 필요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이런 사고들이 있을 때마다 난 그런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럽고 이 나라가 싫어지면서 내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뭘 할 수 있는지 무력감이 생기기까지 한다.




그 동안 대구에 아는 사람들의 안부가 걱정되면서도 며칠 동안 뭔가 모를 두려움 때문에 차마 수화기 들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 지내기까지 했다. 감히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삼가 명복을 빈다는 말도 하기가 어려웠다. 신문을 보기도 싫었고, 제대로 뉴스를 볼 수조차 없었다.




며칠이 지나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이유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소위 방화범 용의자를 두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는 차원을 넘어 공개적으로 사정없이 난도질을 해대는 상황이 너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온갖 매체들이 너나없이 나서서 그 사람의 사진을 그렇게 잘하는 모자이크 처리 하나도 없이 적나라하게 싣는 것 뿐 아니라, 온갖 한다하는 게시판들이 그를 두고 잔인한 말들을 스스럼없이 내뱉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감히 그 누구도 그를 두고 긍정적인 논리나 말은 생각지도, 또 내비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있다.




이런 엄청난 사건 앞에서 우리는 사회적 희생양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된다. 용의자라는 그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가 속한 가족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그런 상황까지도 우리가 마음 아프게 생각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성숙되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용의자는 우리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며 또한 우리 자신의, 아니 내 자신의 아프고 병든 모습 중 한 부분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명을 위해 실수한 몇몇을 광화문 네거리에 내어놓고 처단하겠다는 발상은 휴매니즘이 아니며, 큰 악을 치유하겠다고 나선 작은 악의 미성숙하고 사악한 논리일 뿐이다. 이런 얘기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과 그 가족들의 슬픔을 그냥 넘어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다급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을 그냥 두자는 이야기도 결코 아니다.




계속해서 눈가에서 눈물을 닦아내면서 일지라도, 말 못할 슬픔 중에서 일지라도 아직 이 땅에 살아가고,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 하나 하나를-비록 그가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고귀하게 존엄성으로 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생명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존엄성을 우리 마음에 새기지 못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교육시키지 않는 한, 이 나라에는 유사한 사건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득 영화 플래툰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동안 적을 향해 수도 없이 갈겨대었던 총이 결국은 나 자신을 향한 총부리였노라고 고백하던 주인공의 말이 새삼 가슴에 사무친다.(2003.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