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초

사실 수도자로 산다는 것이 이런저런 집착 없이 훌훌 털어 버리고 언제 어디든 갈 수 있게끔 내면의 자유를 누리는 철저한 이탈의 삶인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가을날이면 문득 열 일곱이 되던 가을에 이불보따리 하나와 내려들게 되어있던 당시의 칸막이식 책가방 하나에 이것저것 챙겨서 혼자 수도원으로 처음 가던 그 날이 생각나지곤 한다. 그렇게 시작한 수도원에서의 삶이었고 철저한 이탈과 가난을 살도록 오랜 기간 동안 세뇌된 나임에도 오늘 내 사무실이며 침실을 둘러보면 트럭 하나에 가득 싣고도 모자랄만큼 많은 것들이 있다. 모든 게 부질없는 미련이고 집착이라는 생각에 어느 날 깡그리 없애버리고도 싶은 생각이 드는 날이 있지만 그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가 생겨 그러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그렇게 날이 가고 만다.

 

요즈음 나의 사무실에 하나의 집착거리가 또 생겼다. 바로 사랑초라는 화분이다. 사랑초를 왜 사랑초라 하는지 그 연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잎의 생김새가 하트모양이고 하는 짓이 너무 귀엽고 꼭 사랑 받을만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지 않나 싶다. 가느다란 줄기에 온통 짙은 자색의 하트모양 커다란 잎을 세 개씩이나 지녔고 아침이면 햇빛을 보러 잎을 활짝 열었다가 저녁 해질 무렵이면 꼭 나비가 날개를 접고 가지에 매달려 있는 듯이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든다. 창 가 햇빛 잘 드는 곳에 두면 연보랏빛 꽃을 일년 내내 혼자서 피웠다 졌다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따뜻하고 아늑한 곳, 그리고 물을 아주 좋아하지만 바람은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데 사랑초의 꽃에는 향기가 없다. 아마도 모든 것을 다 갖도록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려 하셨나보다.

 

내가 이 사랑초와 인연을 맺은 것은 두어 해 전이다. 지금 캐나다로 이민 가서 사는 누나가 떠나기 전 아파트 베란다에 키우던 것을 조카녀석이 내게로 가져다 준 것이었는데 처음 보는 식물이고 경험이 없던 탓으로 사무실에서 나를 도와주는 정선이라 이름하는 아가씨와 내가 공동으로 한 2주일 사이에 완벽하게, 말 그대로 철저하게 죽여버린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그 후유증으로 내심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덩그랗게 빈 화분만 속상해서 며칠 쳐다보다가 치워둔 화분이었는데 다음 해 봄 내 생일날에 맞추어 정선이가 특별히 부탁하여 구입해다 준 것이 지금의 사랑초이다. 그 때부터는 정선이가 얼씬도 못하게 하고 내가 직접관리 체제로 돌보아 왔다. 어떤 식물인지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누구에게 물어 볼 생각도 없이 이 쪽에 놓아보았다가 저쪽에 놓아보았다가, 물을 이렇게도 주어보았다가 저렇게도 주어보았다가 속으로는 몸살을 앓을만큼 별 짓을 다 했었다. 그리고 순전히 경험적으로 사랑초를 배웠고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단지 한 가지 신념 아닌 신념이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마음과 정성을 쏟을 때 결코 나를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사랑초에 대한 믿음이었다. 아마 사랑초 자신도 바보같은 나를 만나 무던히 시달리면서 그렇게 나를 배웠고 알았으리라 싶다.

 

이 가을 날 이제 누가 봐도 부러운 사랑덩어리 사랑초 화분 하나를 앞에 놓고서 나는 이 사랑초와 그 동안 서로 사랑하는 법을 그렇게 배우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굵은 줄기 하나를 잘라 유리컵에 한 2주간 담가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는 밑둥이에 잔뿌리가 너 댓 개 돋아난 것이 보인다. 사랑이 많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분양을 해야겠다. (2001.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