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이른 새벽이다.


안개가 자욱한 강 가를 거닐어 본다. 왜 거닐어야 되는지,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그 축축함에 젖어 한참을 그렇게 걸어본다. 초저녁 잠이 많아지고 이렇게 새벽 잠이 없어지는 것은 남들이 말하는대로 그렇게 나이가 많아지거나 늙어가는 것일까? 일순간 두렵다.




조용히 첼로 연주곡 cd 한 장을 걸어놓고, 난로를 펴 놓고 그렇게 책상에 앉아 본다. 무엇인가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음악에 그렇게 한 동안을 내 맡겨 본다. 읽어야 할 책도 있고 써야 될 글도 있지만 괜스레 책상 설합을 열어 이것저것 뒤적거려 본다.




한 달에 몇 편씩은 이 난에 글을 썼었는데 근 한 달여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이렇게 저렇게 세속적인 인연에 바빴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은 구실이요 핑계이다. 뭘 써 내야만 될 것 같은 강박에 나 스스로 묶이고 싶지 않았고 도망이라도 가버리고 싶었던 것이 이유라면 상당히 정확한 이유일 것 같다. 그것도 아니라면 드러나지 않게 가을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 남들에게 그럴 듯하게 비쳐질 이유라면 이유일까?




어느 날은 마음이 바빠 며칠씩 내리 뭘 읽고 써 내려가다가 또 어느 날은 하염없이 모든 것이 쓸데없고 부질없이만 느껴지고, 또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지고. 그래서 몇 날이고 놀면서 흐르지 않는 강과 멀리 화악산만 바라보고. 그렇게 김기창 선생님의 표현처럼 시간만 제 멋대로 ‘후딱후딱’ 가버리고 만다. 어느 새 가을이 가고 성큼 초겨울이다. 춘천의 가을은 유난히 짧다. 강은 너무 가깝고 화악산은 너무 멀리 있는 것만 같다. 강도 산도 그대로 그저 제 있을 곳에 있을 뿐인데.(200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