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감사

어떤 행동이 악에 대항하고 선을 도모하는 일인지 아닌지는
그 행위의 성격이 감사라는 특성을 지녔는지 아닌지로 식별할 수 있다.

뭔가를 가시적인 성공 없이도 견뎌내려면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만 한다.

감사는 치유에서 비롯되고, 분노는 상처에서 비롯된다.
감사는 나눔의 추구이고 분노는 소유의 추구이다.

그런 의미로 감사는 아픔을 안고서도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감사하는 삶은 누군가와 공감하고 눈빛만으로도 연민을 나눈다.

속박이 아닌 자유, 집착이 아닌 해방, 그런 것이 감사에서 우러나는 내용들이다.

우리 모든 행위의 원천이 감사일 때,
우리가 누군가에게 뭘 준다는 것은 오히려 받는 것이 되고,
우리가 사목하는 소위 그 사목대상자라는 이들이 거꾸로 우리를 사목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보살피고 돌보아 주는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우리 자신이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이고,
우리가 도와주는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우리가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감사 안에서는 이처럼 우리의 의도와는 거꾸로 모든 것에 본말本末이 전도된다.

성화聖化와 성덕의 척도는 감사이다.
성인聖人의 동기부여는 감사에서 비롯된다.
성인聖人은 주어지는 것을 받아서 감사하는 사람이다.

감사하지 않으면 선물을 선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감사하지 않으면 선물을 우리 것인 양 착각한다.
감사하지 않으면 그래서 취하려든다. 움켜쥐려 한다.
그것이 죄의 시작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있으면서
생명과 배필, 그리고 동산에 감사하지 못하고 취하려 들 때에 죄가 시작한다.
곧 이어 부끄러움과 핑계, 벌과 고통이 생겨난다.

원뿔

외국말을 배울 때

어리석게도 세월이 가면 외국말이

저절로 들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렇듯이 봉헌생활을 할 때에도

세월이 가다보면

성덕이 출중해지는 것으로 알았다.

 

형제들 간의 아픔들도 이렇게 성장한 성덕으로

서로서로 양보하게 되고

서로서로 이해하게 되고

서로서로 받아들이게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착각이었고

잘못된 명제였다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원뿔은 밑면이 원인 3차원 도형이다.

한 점에서부터 밑으로 각기 뻗어

동그란 원이 된 것이 원뿔이다.

우리는 맨 밑바닥의 동그라미를 그리는

조그만 점들이다.

 

그 동그라미가 한 점이 되는 것은

서로의 양보와 겸손의 덕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다.

원을 이루는 점들이 양보와 겸손의 미덕으로

옆구리의 간격을 좁혀 하나가 되려고 들면

원이 찌그러지고 망가지고 만다.

 

원을 이루는 점들은 나름대로 위로 올라가야한다.

위로 올라가기를 꿈꾸어

저마다 위로 올라가다 보면

점점 서로 가까워지고 마침내 한 점에 이른다.

원이 하나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점들이 위로 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다소 떨어져 서먹해진 이들이라도

서로 위로 가기를 기도해 줄 수는 있다.

 

한 점이 되는 것,

또 애초에 우리가 한 점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각자의 내공과 덕성,

타협과 처세의 연마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위로 가는 움직임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처세로 위장한 형제애

사목상의 이유나 바쁨으로 회피한 형제애

거짓으로 조작한 형제애 안에서

나도 속고 너도 속는다.

그리고 결코 하나가 되지 않는다.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우리 공동체의 원형原形이 있다는 말씀은

바로 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