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울 치恥

부끄럽다는 뜻이 붙어 있어서 부정적이거나 삼가야 할 글자처럼 느껴지지만 원래 ‘부끄러울 치恥’는 사람의 바른 본성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글자이다. ‘부끄러울 치恥’는 ‘귀 이耳’와 ‘마음 심心’이 합해져 만들어진 형성문자로서 귀로 드러난 마음의 상태, 곧 붉은 혈액의 엔진인 심장(마음)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나 내적 감정의 흔들림이 귀에 전달되어 홍조로 귀가 붉어진 모습이다. 다른 말로 하면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어서 겉과 속이 같은 상태이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고, 겉과 속이 달라서 속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낯 두껍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을 후안무치厚顔無恥(두터울 후厚, 낯 안顔, 없을 무無, 부끄러울 치恥)라 한다. 나중에 이 글자는 모욕이나 창피를 입어서도 낯이나 귀가 붉어지므로 ‘체면을 구기다’나 ‘창피를 당하다’라는 뜻으로 발전한다. ‘부끄러울 치恥’가 사람의 본성을 나타내는 글자인 것은 웃음이나 울음과 달리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홍조를 시늉할 수 없다는 것만 보아도 자명하다. 속에서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는데 일부러 귀나 얼굴을 붉히는 홍조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귀가 아닌 얼굴에 홍조가 드러나거나, 마땅히 드러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그리는 데는 ‘뻔뻔스러울 전, 부끄러워할 면靦’이라는 글자가 따로 있다.

‘부끄러울 치恥’는 중국 춘추시대 제齊 나라의 사상가요 정치가이자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 ?~BC 645년)이 지은 관자管子의 ‘목민편牧民篇’에서 개인의 속과 겉이 아닌 예禮·의義·염廉·치恥라는 4가지 국가 경영의 기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부끄러울 치恥’는 곧잘 ‘음식을 올릴/바칠, 부끄러울 수羞’라는 글자와 함께 어울려 ‘수치羞恥’라는 말로 쓰이는데, 이때의 ‘수羞’라는 글자 또한 그렇게 가벼운 글자가 아니다. ‘수羞’라는 글자는 ‘양 양羊’과 ‘손 우又’가 합해져서 신神에게 맛있고 좋은 고기로 부끄럽지만 정성스럽게 제사를 올려바치는 상황, 곧 신 앞에 선 인간의 왜소함과 부끄러움을 묘사한다. 이러한 기원을 가진 ‘수羞’라는 글자는 맹자의 공손추公孫丑에서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사람으로 비유되어, 사람이 되기 위한 네 기본 중 하나가 된다. 『무측은지심 비인야無惻隱之心 非人也,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무사양지심 비인야無辭讓之心 非人也, 무시비지심 비인야無是非之心 非人也.(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上)』에서 맹자는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악함을 미워하는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 하면서 ‘부끄러움’을 유학儒學과 성선설性善說의 한 축으로 삼는다.

애틋한 부끄러움과 뻔뻔한 부끄러움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다리는 시간은 조바심의 긴장을 낳고, 긴장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무엇인가의 두려움이 되다가, 그 두려움으로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면서는 조심스럽고 서툴러 부끄러워진다. 그와 같은 것이 애틋한 순수함의 부끄러움이라면, 반대로 “죄로 이끄는 부끄러움도 있고 영광과 은총인 부끄러움도 있다.”(집회 4,21)는 말처럼 떨쳐버려야 할, 죄로 이끄는 부끄러움도 있다. 낯이 두꺼워져서 낯빛이 하나도 변하지 않는 태연함을 수련하여 뻔뻔스럽게 살아도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남몰래 혼자 얼굴을 붉히더라도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다. 굳이 하느님 앞에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느끼고 아는 것이 부끄러움이고, 다른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소위 ‘진실’ 역시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굳이 맹자孟子를 모셔오지 않아도 인간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서 비로소 인간이다.

베드로 사도는 하늘과 땅, 그리고 어둠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부끄러움으로 아침이 되자 사랑하는 분의 말이 생각나 “슬피 울었다.”(마태 26,75) 하느님 앞에 알몸으로 있어도 부끄럽지 않았던 낙원의 인간이(창세 2,25 참조) 죄의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엄정함과 자비로, 두려움과 부끄러움 두 가닥으로 꼬인 채찍을 들어 저를 거듭 내리치시는 중(고백록, 제8권 11.25)』이라고 고백한 대로 하느님의 엄정함과 자비의 채찍, 인간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이라는 채찍, 각각 두 줄로 꼬인 두 개의 채찍을 경험한다. 그래도 신앙은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에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 34,6) 하는 말로 자신을 추스르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