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

어릿광대

이 세상을
한 판의 거대한 서커스 장이라고 하자.
이 서커스 장에는 스타들도 있고 광대들도 있다.

이 서커스 판에서 중심은
당연히 명연기로 박수갈채를 받아내는 스타들임에 틀림없다.

반면에 광대들은 무대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그들은 스타들 사이에 막간을 통해 등장하고
실수와 떠듬거리는 말 짓, 몸짓으로 우리를 몇 번이고 웃게 만들어 준다.
광대들은 스타들의 명연기 때문에 생겼던 긴장을 풀어 준다.

우리는 광대들을 만날 때
감탄이 아닌 공감으로,
놀라움이 아닌 이해로,
그리고 긴장이 아닌 웃음과 미소로 만난다.

스타와 광대 쪽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야 할 쪽은 분명 광대 쪽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스타중의 스타가 되셔야 되는 분이시고
우리는 누가 뭐래도 광대 쪽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명연기에 감탄하고, 환호하며, 긴장하고,
그 뒤를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몸놀림에는 그저
공감으로, 이해로, 웃음과 미소로 바라보아 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고 살아가야 할 바인 것이다.

책으로 치자면
예수님은 앞표지 우리는 뒷표지,
예수님은 문장과 내용 우리는 글자라는 기호들에 불과하다.

광대들은 인간사의 수많은 염려와 걱정,
긴장과 불안이 웃음과 미소를 필요로 하고
결국은 우리 모두 역시 광대라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어릿광대들이 참 많다.
눈물로써 미소를 감추고
미소로써 눈물을 감추어야만 하는 어릿광대들,

그들은 내 얼굴 위의 하얀 광대칠을 지우려 애쓰지 말고
오히려 덧칠해야만 한다고
나를 부추긴다.

 

이영자씨를 보며

  

이영자씨를 보며,






이영자 씨가 운동으로 살을 뺐는지,


아니면 나는 어떻게 하는지 알지도 모르는


지방 흡입술이라는 것으로 살을 뺐는지,


나는 정말이지 알 수도 없고,


알 이유도,


또 알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알고 싶지도 않다.


정작 중요했던 것은 이영자씨가 그러한 내용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 했고


또 실제로 엄청난 이득을 이미 취했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그 순간 부터 그는 스타가 아닌,


그리고 광대는 더더욱 아닌 두려움에 찬 슬픈 사람이다.


돈이건, 연줄이건, 멋있는 사람이건, 얄팍한 지식이건,


내 주변에 뭔가를 가져야만 자신의 존재 이유가 있었던,


그래서 가져보려고 안간힘을 써야만 했던,


가련한 우리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나는 이영자씨의 모습에서 내 안 깊숙이 자리잡은


나의 두려움을 본다.


그리고 오늘 혹시라도 내가 그러한


두려움의 포로로서 하루를 지내지는 않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200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