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

시와 노래

어떤 현상과 사물을 적절한 어휘로
설명하고 규정할 줄 아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인과 음악가는 그렇게 사람을 살린다.

시인이 영감을 잃어
어딘가에 꼭 맞는 말을 떠올리지 못하게 될 때,
멜로디와 가사, 리듬과 화음들이
도무지 시대와 주변에 맞지 않고 엉뚱한 것들이 될 때,
지금 우리의 말들이 지나왔던 언젠가와 연결될 수 없을 때,
우리는 방황하고 혼돈 속에 살며 어지럽다가
마침내 죽는다.

스치듯 떠올리거나 읽게 된 한 마디 말에,
어디선가 들려온 한 가락 곡조에,
우리는 인생을 다시 살만한 것이라고 느끼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내가 시인(詩人)이 되지 못하는 이유

 

내가 시인(詩人)이 되지 못하는 이유




나도 어렸을 때부터 국어 실력이 좋았고 또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떤 소위 문학동인회 라는 곳의 멤버였으며 그런 저런 연유로 애들 잔뜩 모인 학생회관 같은 곳에 가서 나의 시를 발표하고 어깨가 우쭐해지던 그런 시절 마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책 같지도 않은 책을 써서 출판하는 사람들을 반쯤은 시새움 섞인 시선을 감추며 애써 무시하기까지 해 왔다. 어쩌면 이런 나의 심정 한 쪽 켠 에서는 나도 책을 쓰고 싶은, 또 작가라는 소리도 듣고 싶은 그런 욕구가 강했었나 보다. 그 어렵던 군대 시절에 원고지를 몇 천장 묶어 가지고 다니면서 개발새발 되먹지않은 얘깃거리들을 그적거리던 일, 지금도 내 책장 한 쪽에서 언젠가 나의 멋있는 필치로 작품화 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소설을 쓰기 위해 모았던 자료들.




어찌 되었건 내가 작가 내지는 시인이 되고 싶었던 욕구가 강했던 것은 숨길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에 와서 또 한 가지 거의(?) 분명한 내용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내 죽기 전까지 결코 그런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은 동경 그 자체로 남아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6년 전부터 나는 이 곳 춘천에 와서 살게 되었다. 그것도 강(江)가 경관이 수려한 곳에 살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오기 싫었던 강원도 땅이었으나 애써 정(情)을 붙이고 마음 한 구석에 꽃씨를 심어 이제는 떠나기 싫은 이 곳이 되어버린 까닭은 상당부분 저 강에 이유가 있다. 강 옆에 3년을 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된다던 그런 불확실의 명제였으나 내 마음의 강한 욕구를 채워 줄 여지와 이유 내지는 탓을 바로 저 강에라도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는 아직 작가는커녕 시인이 되지 못했다. 그것도 3년의 곱빼기인 6년을 살았는대도 말이다. 그래서 요즈음 같은 서정적이고 시인들의 계절이랄 수 있는 가을날에 접어들면서 나는 도대체 내가 왜 시인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과 불만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나는 왜 시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일까? 강을 바라보면서 수도 없이 되물었고 또 지금도 되묻고 있는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고 요즈음 나에게 화두라면 화두이다. 며칠을 두고 찾아도 그 답이 명료하게 찾아지지 않는다. 단지 이 강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이 아니라는 사실에 상당부분 혐의를 두게 되었을 뿐이다. 댐에 의해서 물과 고기들이 갇혀 있고 장마나 홍수가 지고, 그래야만 수문을 열고 또 그래야만 정겹게 보다는 무섭게 흐르게 되는 강이 바로 이 강이다. 한 마디로 슬픈 죽음의 강이다. 생명력을 상실한 강이고 조작된 강이며 강이 아닌 그렇다고 호수는 더더욱 아닌 이상한 강이다. 내가 강 옆에 살면서도 시인이 될 수 없도록 만드는 이런 강이 나는 어느 날 애처롭고 슬프다 못해 미워지다가 싫어지기까지 한다. 어쩌면 흐르는 강 옆을 찾아 또 다른 여행을 떠나야 할 때가 되어버린 것일까? (200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