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문제인지, 우리가 문제인지

미국이 문제인지, 우리가 문제인지


 도대체 미국이 문제인지 우리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째서 눈만 뜨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어야만 우리가 잘 살게 된다하여 그것을 먹으라는 쪽과 못 먹겠다는 쪽이 갈려 연초부터 치열한 공방을 시작했지만, 그 논쟁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는 미국 발 경제 위기라는 발도 없는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안팎으로 괴롭히니 모두가 못살겠다며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괴로움의 호소를 넘어 미국이 잘 살아야만 우리가 잘 살게 될 것 같은 두려움 섞인 중압감은 어느 새 우리를 덮쳐 짓누르고 있다. 작년에는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 몇 명 죽었는지 숫자세기로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미국의 경기지표 지수로 아침을 열면서 속수무책으로 그저 미국이 어서 빨리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주기만을 내심으로 바라고 있다. 듣기 싫어도 들리는 소리들이고 보기 싫어도 보아야만 하는 내용들이다. 머나먼 미국의 이야기들이고 우리나라와는 별로 상관없는 내용들이라고 큰소리치며 걱정 말라던 이들,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면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만은 확실하게 발전시킬 것이라던 이들이 다 어디로 숨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께서는 지금이 1년 내에 부자 될 수 있는 호기이니 이를 놓치지 말라시는데 당장의 민생고를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말씀이다. 우리는 이렇게 올 한 해를 마감하려는 끝자락에 와 있다. 우리는 금년 들어 무엇을 계획하였고 결심하였으며 그 결심들을 어떻게 얼마만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자본주의가 이루려는 세상은 결국 허위욕구의 창출이고 허구의 상징화이다. 유용한 정보라며 다가오는 구매유혹, 포장(包裝)에 기술이 가세하여 생산해 낸 기만과 조작의 멈추지 않는 먹이사슬, 시장만능주의라는 굴레 안에서 우리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거짓을 학습 받고, 무한 경쟁이라는 원리를 신봉하며, 모든 것에 물질로 보상이 가능하다는 신념체계를 맹신한다. 거대한 소위 미국 발 경제위기는 물질적 가치와 탐욕의 가치 그리고 외면적 가치에만 매달려 허덕이는 인간들의 허상이 무너지는 과정이고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계기이다. 그런 가치가 우선되어서는 안 되고 정신적 가치와 영적인 가치, 그리고 내면적 가치가 우선 될 때에만 인간들의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소박한 진리를 다시 되새기게 하는 사건이다. 사람들은 정직과 신뢰에 바탕을 둔 가치체계가 붕괴될 때 어떤 결과들이 올 수 있는지를 주변의 고통으로 목격하고 피부로 체험한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좀 더 세련된, 이른 바 시스템의 정비만으로 이 모든 것들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또 다른 거짓 명제를 만들어 내고, 끝나지 않은 위기가 없으며 극복되지 않은 위기란 있을 수 없다면서 과거의 위기와 현재의 위기가 어떻게 다르고 유사한지를 구분하기에만 여념이 없다.


 바람이 차다. 차라리 정신이 번쩍 들게 매서운 바람이었으면 좋겠다. 차가운 바람은 신록의 나뭇잎들을 떨어트리고 앙상한 가지들을 남기지만, 문득 그 나무들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잎사귀 없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면서도 저 나무들이 죽은 나무들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금융위기니 경제위기니 하는 와중에 우리가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값진 교훈 하나는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것이 공허한 발상이며 너와 내가 함께 잘 살 수 있을 때에만 우리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사실임을 상기하여야 한다. 세상이 언제나 그랬고 사람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과 삶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을 묵묵히 꿰뚫어보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 우리 인간들이 마냥 어리석은 실수들을 반복하며 살아가지만 그 실수들의 반복 안에서도 깨우침을 얻어 조금씩 슬기롭게 전진하는 본성과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물주는 인간들이 그어놓은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한 선(線)을 가지고도 곧은 선을 긋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껏 우리가 함께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2008년 11월29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