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부르심

구약성경에는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두 번 거듭 부르시는 특이한 이야기들이 있다. (물론 전해지는 이야기의 맥락에서는 부름의 횟수가 관건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를 만났을 때였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야, 모세야!”(탈출 3,4) 하고 두 번 부르시며 모세에게 거룩한 땅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요청하신다.

아브라함이 마지막 시험을 치를 때도 그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던 부르심을 받고, 모리야 산정에서 눈물을 삼키며 이사악을 묶어 칼로 내려치려 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시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창세 22,11) 하고 두 번 부르시며 이사악을 살려내신다.

스승 엘리의 시대를 마감하고 마지막 판관이 되어 살았으며 이스라엘 역사에 최초의 임금 사울을 축성하여 왕정을 시작하도록 하였던 사무엘의 소년 시절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소년 사무엘을 사무엘아, 사무엘아!”(1사무 3,10) 하고 두 번 부르신다.

어떤 의미에서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도
하느님께서 두 번 부르시는 부르심을 산다
.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땅에 들어서기 위해
모세처럼 두 번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산에 올라 가장 마음 아픈 결정적 봉헌을 하라고
아브라함처럼 두 번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역할과 이름을 지워버리더라도
끝까지 성실하게 소임을 다하기 위해
소년 사무엘처럼 두 번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생으로 한 번 부르셨기에 세상을 만났고,
교회로 또 한 번 부르셨기에 하느님의 백성을 만났던 사람들이다.
백성을 구하고,
그러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지워야 하는 소명을 사는 존재들이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과 하느님 간의 이야기는 긴 세월에 걸친 극적인 드라마이다. 일흔 다섯 나이에 고향, 친족, 아버지 집을 떠나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는 명령(창세 12,1)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손과 약속의 땅, 축복을 위해 군소리 없이 길을 떠난다. 여든 여섯에 얻은 이스마엘도 과분했는데, 아흔 아홉에 이르러서는 이사악을 약속받고 비로소 정식으로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으로 아브람은 아브라함, 사라이는 사라가 된다. 백세에 웃음이라는 뜻을 지닌 이사악을 얻음으로써(창세 21,5) 하느님 말씀이 참된 현실임을 믿게 된다. 그러나 이사악이 열두 살,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백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모리야 땅에서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청천벽력 같은 시험에 든다. 제물이 어디 있느냐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러나 가슴이 찢어지는 물음에 아브라함은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하고 대답하며, 부자父子는 계속 함께 산을 오른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37년간의 긴 시험을 마치신다. 그렇게 하여 아브라함은 인류 역사 안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불린다.

 

믿음의 여정은 길다.
믿음의 여정은 결단을 요구한다.
믿음의 여정은 철저히 자기를 버려야만 한다.
믿음의 여정은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는다.
믿음의 여정은 긴 세월 뒤에야 이름을 얻는다.
믿음의 여정은 아프다.
믿음의 여정은 예기치 않은 시험이 찾아온다.
믿음의 여정은 눈물 속에서도 계속 가는 길이다.

믿음의 여정은
철저히 하느님 것을 하느님께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