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날도 오겠지

괜찮은 날도 오겠지

아직도 계절이 뜨겁다. 여전히 꺼지지 않은 촛불과 쇠고기, 독도와 일본, 어엿한 독도를 리앙쿠르 록스로 원상회복하여 다시 불러주니 가슴 쓸어내리며 감지덕지해야 할 것 같은 묘한 분위기와 미국, 물가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허덕임,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건 사고, 안전관리니 인재니 하는 후렴들.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비 피해와 죽어가는 사람들, 관광에 나서 여유롭게 새벽 해변을 산책하다 총에 맞아 죽은 사건과 이를 조사할 수도 없는 억울함, 중계인지 예보인지 모른다는 기상청과 장비 탓으로 이어지는 짜증나는 구습의 반복. 직책이 곧 이권이라며 벌이는 돈 봉투 잔치와 대통령 부인의 사촌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거액의 장사가 되는 매관매직의 뒷거래. 온통 뒤죽박죽이고 우왕좌왕이며 애들 말대로 ‘왕짜증’이다. 그런 와중에 가장들은 딸린 가족들이 무서워 하루라도 휴가라는 이름으로 때워 보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렇게 여름을 지내고 있다.

내가 점쟁이는 아니지만 내년 이맘 때까지 이 나라에 생길 일을 대충 예견할 수 있다. 정치꾼들이 실상 아무것도 아니면서 대단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요상한 일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고시원이니 뭐니 하는 다중시설에서 큰 불이 나 안전관리와 인재라는 얘기를 한 1주 정도 떠들어대다 말 것이며, 장마와 태풍이 오면서 물 난리로 죽어가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퍼주기다 아니다 하며 논란을 벌이다 조용해질 북한 관련 사건이 한 두어 개쯤 터질 것 등등이다.

조용한 날 없는 뜨거운 여름

복잡다단하기 이를 데 없는 역사를 살아가는 것이 국가적 경영이고 개인적 삶의 영위인 것 같아도 정작 10개도 안 되는 주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가면서 떠들어 대는 것이 우리들의 어리석음이다. 옛 성현들이 뭐든 사자성어로 표현하기를 좋아했다 하니 우리네 삶의 의제도 요약에 요약을 더하면 한 4개쯤밖에 안 되는 것일까?

이 세상을 지으신 조물주의 섭리만이 계절의 변화를 주관하시고 갈무리 하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서 사람들의 몫이 무엇인지 헤아려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줄을 알면서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가 써 내려가고 결국 우리가 우리의 꼴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고상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렵다.

사람들은 자꾸 하늘 대신 하늘에 버금갈 높은 사람들만 쳐다보는 습성을 가지든지 아니면 독불장군식의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만을 고집하면서 살아간다. 대통령이 바뀌고 미국 대통령이 찾아오면 모든 게 나아질 것 같아도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기야 위대한 정치인이 위대한 국가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구석기 시대쯤의 무지의 소치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중의 휩쓸림에 내둘린 사람들은 자꾸 그런 정도의 환상이라도 붙잡아야만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장구는 못 치는 사람이 장구 탓만 하고 피리를 못 부는 사람이 피리 탓만 한다더니 우리 꼴이 딱 그렇다. 내 자신을 먼저 탓하는 것이 우선인데 속죄양이며 제물로 바칠 양을 찾느라 우리는 그저 바쁘다.

영영 가지 않을 것만 같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계절의 변화가 오는 것을 알기에, 조만간 조물주의 섭리가 우리를 이끌어 가리라 믿어본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역사는 흘러갈 것이고, 올 것은 기필코 올 것이며, 이루어질 것은 기어이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라는 질긴 희망을 가진 우리들이기에 100년쯤 이렇게 되풀이하다보면 언젠가는 괜찮은 날도 있겠지 하고 믿어본다.

‘긍정의 힘’을 믿어본다

멋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몇 백 년씩 걸려서 한 일을 우리는 운 좋게 조금은 당겨서 해 낼 수 있을 것이기에, 내가 사는 세상보다는 나의 후손들이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나을 것이라 믿어본다. 고만고만한 우리 수준이 그 정도려니 여기면서, 그래서 너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것이니 이 모두가 우리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애초에 우리가 하나에서 출발했고 현재에 하나를 이루고 있으니 손가락질할 것도 미워할 것도, 아프게 서로를 찔러댈 것도 없다는 사실을 되새길 뿐이다.(2008년 8월9일 경향신문)

왕짜증

 

왕짜증




참 짜증나는 날이다.


신부가 나날이 즐겁고 인생이 보람되고 그런 날들이어야 할 텐데도 그렇지가 못하다.




날씨는 계속 찌뿌둥하더니 시원한 빗줄기도 아니게, 지적지적 왼 종일 그렇게 뿌려댄다. 집안 온 복도들이, 또 식당 바닥들이 습기로 미끌미끌하고 걸레질을 해도해도 금방 축축해진다. 장마다.




지금 집에는 정신장애와 지체장애 청소년들 147명, 거기에 따라붙는 교사들 50명이 함께 하고 있다. 한 녀석은 내 보기에는 전혀 이유도 없이 한 나절을 울어대다가 이제야 겨우 울음을 그쳤고, 한 녀석은 괜스레 벽을 제 주먹이 아프게 두들겨만 댄다. 한 녀석은 울음도 아니고 외침도 아닌 괴성을 복도가 떠나라고 쉴 새 없이 질러댄다. 한 녀석은 복도 한 쪽에 제 좋아하는 자리인지 그 곳에만 앉아 있고 싶어 하고 한 녀석은 저녁 메뉴로 나온 돈까스를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구했는지 계속 먹어대며 맛있다고 지나가는 내게 자랑한다. 그만 먹어야할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화장실에서 옆에 만난 한 친구는 장애인들을 위한 파이프 손잡이가 없는 소변기 앞에서 그 소변기를 부등켜 안고 일을 치르느라 괜히 내 얼굴이 달아오르게 하고 그런 시설이 없는 이 집의 책임자로서 나를 미안하게 한다. 내가 이 친구들을 이해 못하듯이 하느님 보시기에 내 모습이, 내 꼬라지가 이렇게 이해하지도 못할 그런 것임을 나에게 깨우치느라고 이번 주에 우리 집을 찾아온 이 친구들이기에 내게는 선생님이다.




그런데 오후에는 앞마당에 며칠 째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차를 주차해놓고 연락도 없는 사람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 경찰에 차적 조회를 해도 소유주가 파악되지 않고, 어쩌고 저쩌고를 하루 종일 하다가 선팅 해 놓은 차창 안에서 겨우 발견한 우편물의 주소를 어렵게 읽어내고 그 주소 따라 다행히 아파트여서 원주시 소재 그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그 집으로, 그 사람의 휴대폰으로 30여분 만에 전화비 몽땅 들여가며 찾아 통화하고 보니 원주 모 파출소의 순경이란다. 계급은 경장. 휴대폰으로 어찌된 영문이냐 했더니 근처에 교육받으러 왔단다. 말 한마디 없이 5일째 차를 세워놓은 것도 그렇고, 응답하는 당당함도 그렇고, 마지못해 차를 가져가면서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이 가지고 도망치듯 가버린 그 경찰이 밉고 짜증난다. 30대 초반의 이 나라 경찰이 벌써 이런 것부터 배웠나 싶으니까 이 나라의 경찰이 또 무더기로 싸잡아서 미워진다. 그래선 안되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서 그런지 얼마 전에 떼어낸 혹 옆에 또 무슨 혹이 생겼다고 그런다. 정말 왕 짜증이다. 마음 같아선 강 옆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책이나 읽고, 신부 같은 일이나 하고, 애들하고 가끔 웃음이나 웃어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데 왜 그게 그렇게 안될까? 금방 소리도 없이 한 녀석이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사무실에 들어와 이것저것 참견하고 한참을 내가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수다를 떨고 간다. 그래도 밉지는 않다. 이 순간에 괜스레 웃음이 나게 만든 그 녀석이 고맙다. 참, 세탁기에 빨래 넣어놓았다. 빨래 털어 널러 가야겠다.


A-썩어질! (200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