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청소년의 달

   5월, 청소년의 달이다. 우리의 미래라는 청소년을 이 5월 한 달만 생각하기 위해 청소년의 달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싶을 만큼 이 달에는 청소년들을 위한다는 각종 행사가 범람한다. 각양각색의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이라는 단어를 두고 얘기할 때, 즉시 그 단어 뒤에 ‘문제’라는 말마디를 붙여서 이야기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이른 바 ‘청소년문제’는 대개 천편일률적으로 몇 가지의 통계 숫치를 인용하면서 세 가지 정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종결지어지게 마련인데, 가정교육이 엉망이니 이를 각 가정으로부터 잘 해야겠다는 것이 그 첫째이고, 입시 위주의 학교교육이 문제이니 그런 교육을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이 그 둘째이며, 가치관이 붕괴되었으니 전통적으로 값어치 있는 가치관의 고수를 위해 애를 써야겠다는 것이 그 셋째이다. 일반적으로 청소년이라는 주제어를 함유하고 있는 논문들이나 세미나들, 그리고 행사의 축사들이 대개 이런 틀 걸이 안에서 요약정리 할 수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먼저 나는 ‘요즘 애들은 형편없어.’ 라든가, ‘요즘 애들은’ 어쩌고저쩌고 해 가면서 애들을 문제의식이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을 반대한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못마땅하게 보일지라도 요즘 애들은 이미 기존의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잘났으며, 풍요로운 세대를 아름답게 잘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몇 배 몇 십 배, 부러울 만큼 더 잘 살아갈 것이 틀림없다. 아니, 적어도 그렇다고 믿어야만 한다. 청소년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그 미래는 우리가 믿는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바라봄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견해나 시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옮겨야만, 말 그대로 청소년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할 줄 아는 어른이 되며, 칭찬받고 자란 아이가 칭찬 할 줄 아는 어른이 되며, 신뢰받고 자란 아이가 신뢰할 만한 어른이 된다. 애들을 더욱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둘째로 청소년은 우리 기성세대가 가르쳐야 할 대상이라든가 교육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소년은 기성세대가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성세대와 함께 지구라는 별 위에서 인생의 한 때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동반자이고 동행자이다. 나의 체험에 누군가의 체험을 더하면 그만큼 나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나의 생존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생각으로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의 체험을 자기들의 체험으로 삼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물론, 청소년들 또한 기성세대의 체험을 자기네들의 체험으로 삼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이것이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교육이라면 교육이다. 그런데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서 강요로 되지는 않는다. 청소년들이 기성세대를 바라보면서 기성세대의 체험을 자기네들의 체험으로 삼고 싶어 하도록 멋진 삶을 보여주고 따라 하기를 그저 바랄뿐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교육은 ‘보여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으며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아 기성세대 역시 청소년들로부터 사랑받아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셋째로 오늘 이 땅의 청소년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애들이 머리에 물을 들이면 공부를 못하게 된다고 어른들이 말하지만 애들도 그렇고 어른인 나 역시도, 공부와 머리의 색깔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 것인지 이는 도무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고 또 이해가 되지도 않는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애들이 빨강이면 빨강으로, 파랑이면 파랑으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그렇게 어른들과 애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야만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상대방이 내 식대로 완벽해야 하지 않아도 되며, 또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어른됨이고 성숙함이다. 애들을 기성세대 식으로 너무 조급하게 몰아세우지 말고 시간의 인내로 바라보면서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