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인내忍耐

한자 말 참을 ‘인忍’의 구성은 칼날 ‘인刃’과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칼 ‘도刀’에 점을 하나 찍어 예리한 칼이 되는 칼날 ‘인’ 밑에 마음 ‘심’이 있으니 예리한 칼날로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내는 형상이다.

견딜 ‘내耐’는 말 이을 ‘이而’와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말 이을 ‘이’라는 글자는 본래 턱에 난 수염 모양인데,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서 널리 쓰이면서 말 이을 ‘이’가 되었으니, 원래는 수염이다. 그리고 ‘촌寸’은 단독으로 쓰일 때는 ‘마디’나 ‘촌수’ ‘마음’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주로 손의 용도로 쓰인다. 따라서 ‘내耐’의 전체적인 의미는 남성들의 권위와 자존自尊의 상징이기도 한 수염(而)을 손을 이용해 뽑아(寸)내는 형별을 ‘견디어내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수염을 뽑히는 아픔과 굴욕, 모욕을 참고 견디어내는 형상인 것이다.

기원전 745∼695년 사이에 무려 50년간이나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는 위대한 예언자 이사야는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이사 50,5-9) 라는 구절을 남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다시 흐른 후에, 예수님께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 그대로 갖은 모욕과 아픔, 실제 창으로 심장을 찔리는 고통까지도 받으면서(참조. 요한 19,34), 십자가 형을 받고 돌아가시기까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주 인간적인 표현으로 다시 더 어떻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그저 ‘인내’의 사랑이었다.

그렇게 견디신 하느님께서 오늘도 다시 한번 나를 참아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