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엘류


1419. 예감, 어머니가 자주 입에 올리던 말이었다. 그는 예감이라는 것이 삶의 보편적인 흐름 한 가운데,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들 속에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방 식으로 펼쳐져 있는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천지의 모든 일이 이미 기록되어있기(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어져 있는 말-‘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라 는 듯)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1420. 우리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목숨이나 농사일처럼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것들을 잃는 일이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우리의 삶과 세상의 역사가 다 같이 신의 커다란 손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단숨에 사라지는 것이라오.

잃음과 잃음의 연속

 

잃음과 잃음의 연속


   황금 돼지가 맞느니 붉은 돼지가 맞느니 하는 논란 속에 사람들은 붉은 돼지보다는 황금  돼지 쪽으로 심증을 굳힌 듯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돼지 타령만으로도 절로 대박이 영글어 저마다 부자가 될 것 같은 생각들이 드나보다. 황금 돼지가 되었건, 붉은 돼지가 되었건 나하고는 결코 상관이 없을 일이고, 꿈도 꾸지 못할 일인데 그런 꿈을 현실로 살아가는 큰 부자 한 분을 만났다. 그분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근면하고 운이 따라 큰 재산을 이룬 분이었는데, 재산을 딸 둘에게 물려주려 했다가 뒤늦게 깨달은 바가 있다 하셨다. 재산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원심력을 지녀서 그 소유주의 둘레를 빙빙 돌면서 자꾸만 그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관성을 지녔고, 재산의 주인이 그 원심력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지니면 그 재산은 주인의 둘레를 돌기만 할 뿐이지만, 언젠가 한 순간이라도 주인이 그를 지탱할 힘을 상실하거나 약해지기라도 한다면 가차 없이 그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또한 그 무게에 의해서 주인마저 넘어뜨리고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자식에게 뭔가를 물려주고 싶어도 그 자식이 그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잘 가늠하고 그 녀석들이 감당할 만큼만 물려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식 잡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부자의 말씀이었다.


   재산뿐만 아니라 어쩌면 인생살이도 이처럼 내가 중심을 잡고 서있는 둘레를 도는 원심력의 추처럼 자꾸 무엇인가가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려고만 하는 과정인지 모른다. 인생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축적하고 얻어가는 과정인 것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는 착각이다. 인생은 근본적으로 상실과 잃음의 과정이고 연속이다. 태어나면서 편안한 어머니의 자궁을 잃고, 학교라는 것을 다니면서는 집을 잃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 자신을 잃고, 결혼을 해서는 여러 선택의 가능성을 잃고, 점점 나이 먹어가면서 싱싱한 외모와 오랜 친구, 또 내 나름대로 괜찮았던 명성이나 평판을 잃어가고, 50대에 접어들면서는 시력부터 잃더니 노년에 이르러 내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의지와 자신감, 그리고 육체의 독립성을 잃고, 죽음에 당도해서 마침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그뿐이 아니다. 이기심을 통해 우정을 잃고, 방탕으로 순진함을 잃으며, 포기와 버림, 그리고 곁눈질로 신뢰와 사랑을 잃고, 전쟁으로는 집과 생명을 잃으며, 쓰잘 데 없는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으로는 국민과 조국을 잃고, 질병과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으며, 지진, 홍수, 테러, 전염병으로는 생명을 잃는다. 잃음과 잃음의 매일 안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얻어야 되며, 쌓아가야 되는 것일까?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세상의 거짓말과 가면을 벗길 수 있고, 유혹을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파워와 영향력, 권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소박한 사람들의 미소와 작은 자리에서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들리지도 않는 호흡에 의해 이 세상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살아져가고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함께 얻어내야 하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 또 그 진리가 말해지는 자리들을 계속 함께 발굴해 가자고 하는 공동합의이다. 내 가정과 일터에서, 우리가 애초에 하나였고 그래서 너는 모두 내 살붙이이며, 너는 모두 나처럼 아주 보배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들, 또 그런 것이 말해지는 자리들을 계속 발굴해 내야 한다. 그런 합의는 소위 민주적이고 정치적이라는 합의절차내의 다수결이나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만 되는 존재임을 상기하는 진솔한 자각으로만 이루어진다.


   끝으로, 너와 나 사이에 서로 감사하는 감사의 정을 쌓아가야만 한다. 너와 내가 이 시간, 이 공간, 그리고 이 인연을 함께 살도록 조물주가 허락하셨고 그래서 너와 내가 이렇게 특별한 시기와 공간 안에 선택되어졌다는 사실을 서로 함께 감사해야 한다. 내 인생에 대하여, 너의 동행에 대하여, 이 세상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음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