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지 필연인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자욱하던 아침 안개가 언제이냐 싶게 사라지듯,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흔적 없이 마르듯,
하늘의 조각구름들이 바람에 휙 자취를 감추듯,
눈서리 위에 찍힌 기러기 발톱 자국들이 스르르 흐트러지듯,
새가 차고 오른 호수가 상관없다 잠잠하듯.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렇게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사람들 곁을 떠나고 세상을 떠난다.

내가 없어도
햇빛이 그대로이고
풀들이 그대로이며
하늘이 그대로이고
서리 녹은 땅이 그대로이며
호수도 그대로이다.

새 한 마리 날아오르면
새는 자취 남기고 싶은 뜻이 없고
호수는 그림자 남겨둘 마음이 없다.
(2010년8월4일)

Posted by benji

2010/08/04 21:16 2010/08/0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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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나이의 후배 하나가

한참 나이의 후배 하나가

 아직 채 50도 되지 않은 한참 나이의 후배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갔다. 의사이기까지 한 후배였는데 자기 몸에 그렇게 몹쓸 암 덩어리가 온 몸을 잠식해 오는 동안에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한 채 정말이지 어이없게도 그렇게 가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정말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허무한 것인가 하는 회의가 엄습해 왔다. 암이라는 병은 정말 지독한 녀석이고 대단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살아있는 모든 세포를 마지막 하나까지 깡그리 다 먹어치운 다음에야, 그것도 환자의 의식을 최후의 순간까지 또렷하게 유지시켜가면서 그렇게 자기도 죽어가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후배를 마지막 만난 것은 죽기 5일 전이었다. 이미 몸에는 복수가 차올라와 배가 풍선만 하여 졌으며, 간간이 복수를 빼 낼 때에는 복수에 피까지 섞여 나오는 상황이었고, 눈에는 황달이 역력했으며, 몸은 거의 가죽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의식은 모든 부분에서 뚜렷했고 서로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였으므로(그때 후배는 어머니께서 오실 것이라며 누나가 매만져 주는 대로 머리도 빗었고, 심지어 얼굴에 팩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 후배의 부고를 접하는 순간 ‘아니 벌써?’ 하는 내심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그렇지! 사실 그때 몸의 상태로 봐서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사람은 아무리 영특하다고 해도 자기 죽음을 예감하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본인이 의사였으므로 수도 없이 죽어가는 환자들의 마지막 단계가 어떨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학습하였을 터임에도, 본인의 몸에 다가온 그 상황은 필연적으로 나에게만은 예외라고 생각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면 너무 영리한 친구였으므로 본인은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을 주변에는 애써 숨기려 했던 것이었을까?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작은 체험들을 바탕으로 보면 인간은 자기 죽음의 순간을 결코 예감하거나 예견하지 못한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예외일 것 같다는 착각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몇 년 전 어떤 선배 하나가 돌아가시기 전 불과 몇 시간 전에 둘이서만 한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때에도 그랬다. 서로 속엣말을 주고받을만한 처지였으므로 둘이서만 있는 자리에서 아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신음을 하고 있던 그 선배에게 내가 물었다. ‘죽을 것 같아?’ 엄청난 양의 진통제로 간신히 숨과 신음을 내뱉고 있던 위암의 그 선배도 그런 나의 질문에 똑똑하고 분명한 어조로 ‘아직,… 아니야.’ 라고 두 번에 끊어서 대답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도 ‘조금은 시간이 남았나보다’ 생각하고 잠깐 외출을 했었고 선배는 야속하게도 그 시간 동안에 운명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소의 예외는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려는 부정 속에서, 아니면 전혀 실감하지 못한 채로 죽어간다. 실로 삶과 죽음의 이쪽저쪽이 순간이고 찰나인데 그것도 짐작 못하는 우둔한 만물의 영장이 바로 인간이다. 아니 인간의 우둔함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결코 깨우치지 못하는 죽음의 신비이다. 인간들은 평생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종말이 가져다주는 증세들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서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의 죽음만큼은 예견할 수 없는 존재가 틀림없기에 죽음의 문제는 정말 신비이고 아이러니이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한다. 나에게도 닥칠 죽음의 그 순간에 나도 그렇게 죽어갈 것이 뻔 하기에, 아직까지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하느님 앞에 갈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내 자신의 후생이 걱정스럽고 두렵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우화대로 동굴의 위에서는 맹수가 으르렁거리고, 아래에서는 또 다른 맹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다급한 상황에 간신히 중간의 나무에 매달려서 팔의 힘은 빠져 가는데, 그 와중에 낮과 밤이라는 흰 쥐와 검은 쥐가 나무를 갉아먹어 들어오는 다급하다못해 처절한 상황에서조차도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나뭇잎에 흘러내리는 꿀을 핥으려고 혀를 내밀고 눈을 돌린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 했던가? 마지막 날을 위해 정갈하게 준비하고 떠날 수 있는 인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고 자위하면서, 그러니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어거지 아닌 어거지를 쓰는 심정으로 오늘 하루를 또 넘긴다. 잠은 죽음의 연습이라는데, 나는 그 죽음을 다시 한 번 연습해 보겠다고 또 잠자리에 든다.(2010년1월17일)

Posted by benji

2010/01/23 23:01 2010/01/2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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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죽음 앞에서

신자 수가 몇 천이 넘는 성당에 살다보면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돌아가시는 분을 자주 만나야 하는 경우이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얘기하고 알고 지내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을 때는 인간적으로 무척 어렵다. 얼마 전에는 그렇게도 무덥고 변덕스러운 날씨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줄초상이 났다. 주간의 셋째날인 수요일이 채 가기도 전에 무려 다섯 번째 부음을 접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다섯 번의 장례식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죽음 앞에서는 우선 인간이 하염없이 무력하고 인생이 허망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많아서 소위 호상이면 뭐하고 호상이 아니면 뭣할까 싶고, 그 인생이 어떠한 내용의 삶을 살았든 남은 자의 몫일 뿐인 후일담도 그저 얼마간이면 지나갈 일일 텐데 그것이 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싶다. 인생은 애초에 홀로 출발했고 홀로 마감지어야 하는 철저한 혼자임이 틀림없다. 살았어도 또 죽었어도 그것이 순간이고 백지 한 장의 두께만큼도 아닌 이쪽저쪽일 뿐이다.

생사는 백짓장의 이쪽저쪽일 뿐

나의 죽음도 금방일 것만 같아서 잠자리에 누울 때 혹시 내일 아침 일어나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정갈하고 바른 모습으로라도 누워야 되는 것은 아닌가 싶고, 침실의 구석구석을 정리라도 해 놓아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엄습하는가 하면, 외출을 해야 할 때에도 한 순간의 실수가 모든 것을 가름하지나 않을까 싶어 나가기가 겁나고,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채우며 조바심이 스치기도 한다.

죽음을 가까이 자주 목격하며 피부로 느껴 살아가라고 하느님께서 나를 이런 자리에 보내셨다 싶어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감사에 버금가는 정돈된 삶의 모습이지 못한 채 머리로 알고 피부로 느끼면서도 해야 할 바들을 은근히 미뤄놓고 못 본 척 외면하며 살아가려는 내면의 끈질긴 나태의 속성이 어찌 그리 질긴가 하며 놀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나는 괜찮을 거야’ 혹은 ‘오늘은, 아직은…’ 하며 속삭여 오는 악마의 힘이 훨씬 더 강한 것인지, 죽음의 두려움을 애써 잊으려는 삶의 외면인지, 생명의 활력이 너무 강하여 감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 생명 안에 파고들지 못하는 것인지?

죽음 앞에서는 문득 그 죽음을 맞이하는 의례들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인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주검을 어떤 절차와 방식으로 모셔야 하고 우리들이 무슨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심지어는 얼마 동안 울어야 하는지까지 나름대로 규칙과 방식을 갖는다.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는 정해진 틀이 없이는 결코 그 죽음을 맞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고고학에서는 유물, 유적, 유골을 놓고 인간의 흔적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마지막 기준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유한 습성이나 의례, 규칙성 같은 것이 보이는지 아닌지로 한다고 했던가?

죽음 앞에서는 뒤늦은 후회와 고인에 대한 미안함이 범벅된 고인과 나와의 인연으로 엮였던 수많은 기억들이 눈물 속에 지나간다. 또한 ‘법 없이도 살 만한 사람들이 항상 안타깝게도 먼저 간다’는 것이 죽음 앞에 선 남아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정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먼저 가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는 모든 것이 그저 사랑이 된다. 이런 기억들이 고인과 함께 미운 정 고운 정 들어가며 애틋하게 살아왔던 소위 ‘사랑’이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사랑의 실체는 기억일까?

삶의 마디마디 영면을 준비하자

 혼수상태에서 한없이 잠만 자다가 이승을 이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죽음이 연습이요,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개 하루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면서 영원한 수면을 연습하고, 죽음이 임박해서는 잠자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한다. 그러다가 결국 영원한 수면에 빠진다. 잠의 연습처럼 삶의 마디와 매듭들을 의미 있게 지나도록 부단히 연습하다보면 죽음의 통과의례가 조금은 더 쉽고 의미 있어지는 것일까?(2009년 8월1일 경향신문)

Posted by benji

2009/07/31 18:41 2009/07/3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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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달, 4월에

4월의 봄비가 내린다. 봄비는 생명의 비요 축복의 비다. 비가 그치고 나서 세상은 온통 녹색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런 생명의 달인 4월을 두고 ‘잔인한 달’이라 하는 유래를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아무도 모른다. 신에게 영원히 죽지 않을 축복을 청하여 그 축복은 얻었으나,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는 축복은 얻지 못하여, 죽지는 않되 한 없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음을 슬퍼하면서 봄날의 약동하는 생명 앞에서 제발 죽게해 달라고 빌었다는 내력을 아는 아이들이 요새는 없다.

그저 중간고사가 있는 달이라 잔인하고 미팅에서 폭탄 맞고 소개팅에서 퇴짜 맞아 잔인할 뿐이라는 어느 신입생의 우스개가 있을 뿐이다.

생명의 봄이라지만 이런 환절기에는 유달리 초상을 치르는 곳이 많다. 우리 수도원에 함께 살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이 땅에 오신지 딱 50년이 되신 외국인 할아버지 신부님 한 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여든 여덟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점심 잘 잡수시고 맥주까지 한 캔 드신 분이 저녁 나절에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셔서 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에 가시게 되었다. 병원에 가셔서도 힘이 넘쳐 주사를 놓거나 여러 처치를 하기에 힘들어 침대에 묶어야 할만큼 정정하셨는데 다음 날 아침 운명하시고 말았다.

신부님 장례식과 죽음의 의미

옛날 어려웠던 시절 선교사로 오셔서 외국의 원조를 끌어다가 이렇게 저렇게 기여하셨던 분이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분들이 뒷주머니에 몰래 가져온 달러 덕분에 이제껏 공부하고 성장한 셈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하지만 피땀 흘린 노동자들의 수고와 함께 신부님 같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이 땅에 뿌려 준 달러의 힘이 제몫을 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만 한다.

돌아가신 신부님을 황망 중에 땅에 묻던 날, 모든 것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무슨 일을 하였고 무슨 직책과 소임을 맡아왔건, 무슨 업적을 남겼든 말았든 그 모든 것이 그저 허망할 뿐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바로 어제까지 그 노인 신부님이 자기만 아는 것 같아 얄미웠고, 불쌍했었으며, 귀찮기도 했었고, 심지어 아웅다웅 신경전마저 벌이곤 했었는데, 그렇게 한 순간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동안의 모든 논리와 생각들이 부질없었다는 생각, 허무하고 또 허무할 뿐인데 뭘 어쩌자는 것이었던가를 묻게 되면서 죽음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이런 허무함 중에서 ‘의미’라는 단어 하나를 추켜들었다. 길바닥의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내 삶이 죽은 다음에는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만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부님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었으니 당신 믿었던 하느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을 가름하고 의미를 가름하리라.

나는 생명 값을 다하고 사는가

신부님의 초상을 치르면서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두려움이었다. 내게도 언젠가 닥쳐올 죽음과 그 순간에 있을 지도 모르는 고통이 두려웠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이 삶과 나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것들과 어느 순간 졸지에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으며, 내가 믿어 살아가는 하느님 앞에 나서기에는 너무 죄 많은 몸이어서 두려웠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필경 보이지 않는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만의 비밀이 낱낱이 공개되고 서로서로 알게 될 것만 같아 그 때 저승에서 만나게 될 이승의 인연들이 두려웠다.

신부님을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특별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깊이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 신부님의 죽음 앞에서는 왜 이렇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나보다 먼저 죽어가는 사람들의 죽음에 별다른 이유 없이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머님의 죽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어머님께 죄송스럽고 미안했었다는 생각이 계속된다. 아마도 앞선 분들이 마친 생명의 연장을 살아가는 나로서 그 생명 값을 다 못하고 살아간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2008년 4월 19일 경향신문)

Posted by benji

2008/04/21 20:20 2008/04/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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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형제의 죽음

 

한 형제의 죽음

   주어진 시간과 날들은 소리 없이 간다. 누가 훔쳐간 것도 아니고 몰래 어디에 숨겨둔 것도 아닌데 흔적도 없이 그렇게 가고 만다. 매일 아침 세수할 때는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고, 밥을 먹을 때는 밥그릇 위로 지나가고, 멍하니 가만히 있으면 빤히 뜬 눈 앞으로 지나가고, 온 몸으로 가로막으면 나를 훌쩍 뛰어넘어 내 위로 지나가고, 잠자리에 누우면 내 옆을 돌아 내 옆으로 지나간다.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하고 한 형제가 죽었다. 우리 수도자들은 핏줄, 출신, 성장 배경이 다른 채로 만나, 서로 형제라 고백하고, 매일 한솥밥을 먹으며 평생을 공동체라는 이름 안에 인생을 함께 동반한다. 이번에 돌아가신 형제는 일흔을 앞두고 소위 아홉수를 넘기지 못하면서 4년여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죽음에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는 보편성, 그 누구도, 또 그 무엇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대체 불가능성, 그리고 어떤 수단으로도 피할 수 없다는 불가피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한 형제의 죽음을 아주 가까이서 동행해야 했던 체험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맞는 첫 번째 주제어는 품위와 자존심이다. 특별히 오랜 병고를 겪어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형제는 유달리 기저귀를 차기 싫어했다. 기저귀를 차야 한다는 내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에 기저귀는 아니더라도 그 소재로 된 조각들을 잘라 한 쪽에 숨겨두면서 아무도 모르니까 써보라는 말을 하고, 자신이 몇 번 체험한 뒤에야, 그리고 그 기저귀라는 것을 가져다 드리면서도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나와 당신만이 아는 일이고 여기 침대 밑에 숨겨놓았다는 식의 공개된 거짓말 끝에야 그 기저귀라는 것을 차고 얼마동안을 지내다가 그렇게 형제는 돌아가셨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바지 끈을 누군가가 내려줘야 되는 상황이 가장 처절한 비참함을 맛보는 순간이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형제의 이런 모습들은 마지막 자기의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해보려는 안간힘인 것 같았다.

   죽음의 두 번째 화두는 아마도 두려움이다. 형제는 마지막 날 까지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무척 두려웠던 것 같다. 죽음이나 준비 같은 마지막에 관한 말을 서로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이대로 죽으면 축복이지.’ 했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아직은 조금 더 살 것이니 걱정 마.’ 라고 하면서 눈을 흘기기도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거의 의식이 뚜렷해야 하는 잔인한 병인 암이었기에, 형제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임을 절절히 목격하였기에, 말 그대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말이 무엇인지 내 눈으로 보았기에, 형제는 생의 인연을 놓기가 그렇게 두려웠고, 고통이 두려웠으며, 또 이 생(生)을 떠나 다른 생으로 옮겨가 맞닥뜨려야 하는 미지(未知)가 그렇게도 두려웠던 것일까 하고 되짚어 본다.

   죽음이 갖는 세 번째 특성은 일치라고 하는 속성이다. 가족 누군가가 아프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할 때 모두는 쉽게 서로 한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 형제의 주위에 똑같은 마음을 지니고 모여들어 같은 눈물을 흘린다. 죽음은 혼자의 것이지만 동시에 주변에 있는 모든 이의 것이다. 가족 내에서 누가 아프다는 것은 그에게 가족들의 일치된 애정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이겠고, 형제의 죽음 주위에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죽음이나 인생살이가 철저히 혼자만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모든 이의 것이고, 우리의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동일하고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항구에서 어떤 배가 점점 멀어져가다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듯, 그렇게 한 형제의 죽음으로 그 형제를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볼 수 없게 되었기에,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선 너머 다른 포구에서는 점점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저 넘어 다른 포구를 생각할 수 있기에, 그리고 아무것도 확실히 아는 바는 없지만 뭔가를 나름대로 믿을 수는 있기에, 형제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Posted by benji

2007/03/10 20:50 2007/03/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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