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家

‘집 가家’라는 글자는 지붕을 본뜬 ‘집 면宀’이라는 글자와 꿀꿀거리는 돼지를 세로 모습으로 그려 만든 ‘돼지 시豕’라는 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집 안에 돼지를 함께 길러 식구처럼 살았던 중국의 집 구조나 과거 관습 때문에 생긴 글자이건, 한 집에 우글거리며 돼지처럼 함께 산다는 뜻을 담았건, ‘집 가家’는 아주 단순하게 말해 한 지붕 밑에서 살을 맞대고 살았거나 사는 가족을 가리킨다.

6남매 간의 가족 카톡방에 80도 한참 넘어 90을 바라보시는 나이인 1번인 누나가 추석 명절을 맞아 남매간에 추석을 잘 맞으라는 이모티콘 하나를 올리셨다. 문득 ‘가족’이 도대체 무엇이고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앞서 한참 답을 올리지 못하다가 그래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일단 ‘가족 모두에게 기쁜 명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고 올린다.

가족이란 이런 명절에 으레 남들이 하는 이모티콘이나 이미지 하나를 복사해서 안부를 묻는 것일까, 전화나 문자로 생각날 때 소식을 주고받는 것일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가끔 생각나고 서로 그립다는 느낌일까, 먼저 간 이들을 두고 뒤에 남은 이들이 울며불며 아웅다웅 함께 살았던 과거의 한때를 회상하는 것일까, 힘든 중에라도 누군가를 살게 하고 희생하게 하는 원동력일까, 외로움이 엄습할 때 생각나 먹먹해지는 가슴일까, 결국 인생은 혼자여서 외롭다가 마음속 괜한 원망으로 미워할 수라도 있는 대상일까, 한 어머니요 한 아버지로부터 같은 DNA를 물려받았다는 생각으로 체념하는 운명이요 숙명일까, 제도요 윤리이며 관습일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가족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무엇으로 서로를 가족이라 하는 것일까, 온갖 비난이나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지켜내야만 한다는 강박일까, 수천수만 리 길을 달려서라도 만나야만 하는 인연일까, 나를 나답게 하는 배경일까, 서로 힘을 합쳐 지어야만 하는 집일까, 우주를 이루는 기본 세포일까?

살아남아 있는 가족 간은 내가 지금, 이 순간 응급실로 실려 간다고 할 때 가장 먼저 전화라도 할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일까? 그것도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는 불가능할 터이니 나 같은 사제에게는 우선 여기 가까이 있어 내가 전화할 수도 있는 본당 신자들일까? 아니다. 한 이불 밑에는 아니더라도, 코를 골고 냄새나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따로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더라도, 억지로라도 한 방에 자면서 위급할 때 나를 병원에 연락해주고 병원에 데려갈 배필配匹이요 인생의 반려伴侶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가족은 지금 한 지붕 밑에서 살며 서원誓願으로 연결된 형제들이겠지만, 나에게는 아마 그것도 아닐지 모른다. 수도자는 서로 독방을 쓰는 처지이니 설령 내 방에 있으면서 심장마비라도 오면 나 혼자 말도 못 하고 그저 손톱으로 마룻바닥을 긁으며 앓다가 죽고 말 것이니 말이다. 가족은 과연 무엇일까? 병원에 누워있을 때 남들보다는 더 자주, 한 번이라도 더 찾아 오갈 수 있는 사이일까, 먼저 간 이들의 무덤가에서 어쩌다가 드리는 묵주기도일까, 명절이면 같이 밥 먹는 식구일까? 생각이 많다. 너무 어린 나이에 출가出家하여 이제 와 새삼스러운 나의 사고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가족을 별로 얘기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가족들이 찾아왔다고 했을 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으며,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고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8-50) 하시며, 당신의 제자들이요 당신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족이라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가족보다 “이웃”과 타인을 더 많이 강조하셨다.

어쩌면 가족은 순전히 현재의 나만을 고려한 이기적인 발상에서 볼 때, 나와 한 공간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고, 내가 급할 때 전화라도 할 수 있는 이웃이며, 가까이 있어 달려와 나를 병원에라도 데려갈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가족이란 안식처요 피난처, 안식과 따스함을 주려고 있는 것, 마음의 고향, 나를 불러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를 더 보여주는 것, 내가 어찌할 바 모를 때 나를 일깨워주는 기억, 누군가에게는 강철과도 같이 강한 것, 누군가에게는 삶의 한 방식, 누군가에게는 느낌, 어떤 이에게는 잡아야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놓아야 하는 것,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갈등과 고통으로 가득한 바다, 추운 바깥에 비겨 실내의 따뜻한 난로, 비 오는 날의 천둥, 내 기억의 모든 것, 아마도 어쩌면 사랑이다.(존 덴버John Denver가 1975년에 발표한 Rocky Mountain Christmas에 수록된 ‘Perhaps Love’라는 노래를 참조하여 서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