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봄날

어수선한 봄날

이른바 3월의 위기라는 것도 지나갔고, 로켓이니 위성이니 미사일이니 하는 논란 속에 기어이 쏘아대고야 말 것이 뻔했던 북한의 시위도 우리가 ‘나무 심고 있을 때’ 지나갔다 하고, 돈이 많은 어떤 사람은 얼마나 돈이 많은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에게 돈을 싸다 주다 못해 심지어는 ‘가져가라’고까지 했다 하고, 여지없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리 수사 역사가 되풀이 되고, 가련한 여배우의 죽음은 연예계와 스타의 삶이 으레 그렇게 슬픈 것인가 하는 절망을 자아내고, 불길 속에 죽어간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은 언제인가 싶게 잊혀가고, 몇몇 고위 얌체들은 대형 기사들에 고마워하며 용케 대중의 시선을 피해가고 있고…. 그렇게 봄이 오고 또 가고 있는 중에, 우리들은 여전히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피워대고, 너무 많이 마셔대고, 너무 많이 미워하고, 너무 많이 지껄이며, 너무 많이 TV 앞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너무 빨리 달리고, 너무 빨리 열 받고, 너무 빨리 속단하면서 ‘빨리빨리’는 배워도 끈질긴 집요함과 기다림은 배우지 못한 채 또 한 철이 지나고, 계절도 그런 우리들을 닮았는지 기다림을 배우기 전에 꽃을 피웠고 떨어트렸으며 그렇게 이미 다음 철을 준비한다.

기다림 배우기전 또 한철은 가고

학기 초면 학생들에게 이력서 양식을 나누어주고 자신을 소개할 겸 간략하게 써 보라 하는데, 이번 학기의 한 학생이 문득 자신의 포부를 적으면서 ‘부자 되고 싶어요’라고 썼다. 이게 교수님께 제출하는 대학생의 대답일까 싶어 의아스럽다. 내가 어렸을 때 또래의 애들이 책상머리에 곧잘 붙여놓았던 최대 애용 표어는 ‘불가능은 없다’라든가 ‘청소년들이여, 야망을!’ ‘하면 된다’ 이런 것이었는데, 요즈음 아이들은 무슨 말들을 써 놓을까? 학년 초에 학교에서 나누어주고 기록하여 가져오라던 신상명세표 안에 등장하는 장래 희망이나 포부 난에는 무엇을 써 넣을까? 세상이 다양해지고 활발해져서 별의별 내용들이 다 많겠지만, 유달리 한시적 쏠림과 모방 내지 들끓는 속성이 강한 우리 사회의 특성상 요즈음은 스케이트 선수나 축구선수, 야구선수 같은 것을 쓸까? 취미 난에는 독서, 영화감상, 음악감상, 등산, 산책…이렇게 쓸까? ‘좋은 대학에 가서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과 ‘잠자기’와 같은 취미 아닌 취미를 쓸까? 그저 ‘몰라요’라는 답이 아닌 답을 쓸까? 꿈도 없고 취미도 없고 목표도 없으며 더더욱 성취동기가 없는 청소년들이라 하니 말이다. 이런 생각과 궁금증, 논의 자체가 구시대의 산물이요, 정신적인 사치와 허영일 뿐일까?

애들의 이야기는 노인에게까지도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젊어서 자식들 키우고 뒷바라지 하느라 애쓰다가 이제는 그 자식들의 자식들을 돌보아 주는 힘에 부친 일을 얻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일 듯이 살기가 일쑤이고, 종일 자기 혼자 수다 떠는 TV가 유일한 낙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치매의 조짐이라도 보일 것 같으면 천덕꾸러기가 되고 다른 가족에게 부담으로 남아 요즘 유행인 동네 요양병원의 침대 하나라도 얻어 유기되면 불행 중 다행이겠고, 그것도 아니면 방 한 칸을 얻어 국가의 배려라는 몇 만 원의 보조금에 몇 푼을 더하여 스스로의 연명을 도모해야만 한다. 어차피 혼자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지만 사회의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품위 없는 노년을 보면, 나는 치매 없이 온전한 정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과한 욕심이라면 설령 치매가 오더라도 배설물이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되어있어서 관리자가 갈아줄 때까지 배설물 속에서 견뎌야 하는 소위 우주복은 입지 않아도 되는 치매가 왔으면 좋겠고, 치매에 걸려있는 나를 볼 때마다 다른 이들이 재미나게 웃을 수라도 있는 그런 치매였으면 좋겠다. 평상시 살았던 모습대로 치매에 걸린다 하니 그것도 어쩌면 불가능한 소망이다 싶어지지만 말이다.

양지녘서 배려의 사회 꿈꿔본다

어수선한 봄날, 양지쪽에 앉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청소년들에게는 뭔가 하고 싶고 되어보고 싶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사회, 노인들에게는 소일거리와 품위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였으면 하는, 하려고 하면 마냥 어렵지만도 않을 것 같은 상상들을 해 본다.(2009년 4월 18일 경향신문)

Posted by benji

2009/04/17 23:17 2009/04/1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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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 세대

 

청소년을 지칭 할 때 1318 세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3살부터 18살 까지, 그러니까 거슬러 올라가서 1983년부터 1988년 사이에 태어난 애들이라는 말이 된다.


이 시기에는 버어마 아웅산 폭파사건,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을 비롯 해운업 통폐합, 6.29선언, 88 올림픽 등 이른 바 80년 광주의 민주화바람 이후에 군부가 집권하여 폼을 잡아가던 시기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던 시기였다. 나라 밖에서는 마르코스 암살, 마이클 잭슨 붐, LA올림픽, 고르바초프의 개혁, 필리핀 선거 혁명, 체르노빌 원전 사고, AIDS, 이런저런 말마디들이 무성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우리 청소년들은 전자오락과 브레이크 댄스, 주문 식단제, 피자헛, 63 빌딩, 서울 대공원, 올림픽 경기장, 오리털파카, 한강유람선, 현대 엑셀 미국 수출, 청문회, 국민연금제,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허공,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 청문회의 '기억이 안납니다', 추기경님의 '마음을 비워라', 노태우의 '보통 사람', 주가 600선 돌파 같은 말들을 들으며 유아기와 어린이 시절을 보내었던 것이다.


이런 과거사를 굳이 들쳐 내는 것은 우리 청소년들이 살아왔던 배경을 봄으로써 우리의 청소년들을 조금이나마 이해 해 보자는 뜻에서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안에서 탄생하고 자랐던 아이들이 요즈음 우리나라의 이른바 청소년, 그리고 애들이라 불리우는 계층이다.


또 이러한 애들을 지칭하는 여러 말들이 있는데 '신세대'라면 기성세대나 소위 옛 세대, 구세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충은 이해가 되는 어휘이다. 'X 세대'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용된 말은 아니다. 1991년에 미국의 Douglas Coupland 라는 사람이 썼던 소설 'Generation X' 라는 책에서 유래한다. 이 때 X 라고 썼던 뜻은 수학에서 일단 답을 모르는 부분을 X 라고 가정하는데서 비롯된다. 즉 정의하기가 어렵고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뜻에서 X 라고 청소년들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되새겨보면 역사적으로 사회와 기성세대는 어떤 이유에서건 그 시대의 젊은 세대들을 지칭하여 특정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 하였던 듯이 보인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1920년에는 1차 세계대전과 공황을 겪으면서 청소년들이 살아야 할 앞길이 전혀 예측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잃어버린 세대' 곧 lost generation 이라 불렀고, 50년대에는 전통적인 가치와 리듬을 전면 부인한다는 뜻으로 beat generation이라 불렀으며, 60년대에 들어서서는 월남전의 와중에서 로큰롤과 마약, 반항문화가 번져 히피라고 청소년들을 불렀으며, 1970년대에는 소위 反문화의 펑크족이니 화이트칼라의 엘리트 그룹을 지칭하는 여피(youpi), 그리고 자식은 없이 높은 소득을 추구한다는 Double income No kids의 딩크니, 나만 안다는 뜻의 Me세대라 불리우는 여러 유형의 다양한 젊은 층들이 공존하기도 했다.


아무튼 어떤 이름으로 그들을 지칭하건 한 가지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사실 하나는 바로 이 사회와 기성세대가 그 젊은 세대를 만들었고 바로 그들이 우리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이 사회와 우리의 자화상이요 얼굴이다. 우리의 모습과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2001.6.17)

Posted by benji

2007/04/18 17:53 2007/04/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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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가벗은 선생님

 

빨가벗은 선생님


어젯 밤,

밤늦게 하는 심야 토론인가 뭔가 하는 TV 프로그램에

며칠 전 자기 부인과 함께 발가벗은 사진을

자기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긴급체포 되었다는 선생님이

어찌된 영문인지 풀려나와

몇몇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곧바로 채널을 돌려버리고

부족한 잠이나 자자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라 해도 포근하고 아늑한 그런 잠자리도 아니련만.

누가 기다려주는 잠자리도 아니련만.

어쨌건 나는 그렇게 자버렸다.


그 선생님의 성함이 뭔지

그 토론의 주제가 뭔지 잘 모르지만 빤하다.

그렇게 이슈를 만들어낸 선생님이

방송국편에서는 분명 호재거리 였을 것이고,

토론 주제는 보나 안보나 표현의 자유니 뭐니

그런 것이었을 게다. 또는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주제 였다면 나는 지금 엉뚱한 헛소리를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용서를 청한다.

그리고 헛소리라고 한 번 웃어주시길 빈다.


나의 이 홈페이지가 생긴지 불과 일주일 밖에 안되지만

전국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

최고로 유명한 사이트가 되게 할 자신이 있다.

신부인 나도 빨가벗고 내 별볼일 없는 누드를 한장 올리면

끝내주게 뜰게 분명하다.

아마 온 세상이, 교황청까지도 관심을 보이실게 아닐까?

그리고 점잖게 로만 칼러 하고 얼마 후에는

표현의 자유니 예술이니 소신이니 해가면서

TV에 한 번 나올 수 있을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아닐까?

모르겠다.


그리고 긴급체포되었다는 그 선생님은

또 어떻게 방송에서 자유토론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궁금하다.

나같은 사람은 "긴급체포"하길래

영화제목처럼 엄청난 사건 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어쨌건 빨가를 벗었건 말았건,

토론을 하건 말건,

긴급체포건 뭐건,

미술이니 예술이니 외설이니,

어쩌고 저쩌고를 난 도무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분이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소명에 따라 되는 것도 있고

안되는 것도 있으며,

해서 될 일도 있고 안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 뿐인 것이다. A-썩어질! (2001.6.8)

Posted by benji

2007/04/18 17:36 2007/04/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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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

 

제목 : 채송화  

 

며칠 전 다리 건너 들에 나갔다가


욕심에 길가에 모여있던 채송화 몇 포기를 담아 왔다.


조그만 화분에 심어놓고 사무실에 모셔


며칠 간 바라보고 마음을 주었더니


오늘 아침 이른 새벽에는 봉오리가 하나 벌어졌고


10시도 안되어서는 금새 활짝 피었다.


사실 화분이란게 꽃들에게는


구속이고 감옥이라 싶어 안쓰러운 생각도 들고,


진달래빛 같은 빛깔이 서럽게 고와


밖에 내다놓았다.


햇빛 좋아하는 채송화에게


원없이 햇빛을 맞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유달리 채송화가 좋다.


양지쪽에 조그맣게 올망졸망 피어서


분홍, 노랑, 하양, 빨강의


형형색색 색깔과 고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에서나 꽃가게에서 팔리는 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라는 애들도 이랬으면 좋겠다.


시장에 내어 잘 팔리는 꽃 같은 그런 사람보다는


나름대로 고유한 아름다움과 빛깔이 있는


그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2001.6.7)

Posted by benji

2007/04/18 17:30 2007/04/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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