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질 도倒

‘넘어질 도倒’라는 글자는 ‘사람 인亻’ ‘이를 지至’ ‘칼 도刂’라는 세 글자가 합하여져 있다. ‘사람 인’과 ‘칼 도’는 익히 짐작이 간다. 문제는 가운데에 있는 ‘이를 지至’이다. ‘이를 지至’라는 글자는 맨 밑의 한 획을 땅이라고 볼 때에 그 땅에 내려꽂히는 화살의 모습이거나 새가 땅을 향하여 내려앉는 모양이라 하여 ‘이르다, 다다르다’를 뜻하면서 어딘가에 다다라 마침내 뭔가 상황을 연출하게 되므로 ‘영향’을 미치거나 ‘지극’한 경우, ‘힘쓰다’는 내용이 된다. 심지어甚至於(무엇인가가 심하게 처지를 악화하는 경우), 지독至毒(하다-정도가 심하여 죽음에 이르는 독과 같다), 지천至賤(에 깔려있다-매우 많거나 더할 나위 없이 천박한), 지성至誠(이면 감천)과 같은 말을 쓸 때 모두 이 ‘이를 지至’를 쓴다.

이와 같은 ‘이를/다다를 지至’를 바탕으로 ‘넘어질 도倒’를 종합적으로 보자면 사람이 칼이나 화살에 맞아 거꾸러져 땅에 다다른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된다. 똑바로 서 있어야 할 사람이 고꾸라져 있거나 뒤집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넘어질 도倒’는 ‘욕할 매罵’를 더해 ‘매도罵倒’가 되면 누군가에게 몹시 욕을 해서 상대방이 넘어지게 하려는 것이고, ‘누를 압壓’을 더해 ‘압도壓倒’가 되면 누군가를 눌러서 넘어뜨리는 것이며, ‘칠/두드릴 타打’를 더해 ‘타도打倒’가 되면 누군가를 두들겨 패서 땅에 엎어지게 만드는 것이고, ‘군사 졸卒’(졸은 전선의 맨 앞에서 갑자기 끝나는 존재여서 ‘갑자기’라는 뜻도 지님)을 더해 ‘졸도卒倒’가 되면 갑자기 넘어져 정신을 잃는 것이며, 오른 쪽에 ‘머리 혈頁(머리 수首의 옛글자)’을 지닌 ‘꼭대기 전顚’을 더해 ‘전도顚倒’가 되면 머리가 발이 되고 발이 머리가 되는 상황처럼 엎어지고 넘어지는 것이 된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에서 쓰는 바로 그 말이다. 이러한 ‘넘어질 도倒’를 앞에 놓고 뒤에 ‘두다/둘 치置’를 붙이면 ‘도치倒置’가 되면서 말을 거꾸로 두는 거꾸로 말이 되고, ‘섞이다, 어지러워지다, 등지다’는 뜻을 지닌 ‘섞일 착錯’을 붙이면 ‘도착倒錯’이 되어 이것저것이 뒤죽박죽 어긋난 상황이 되면서 흔히 ‘성도착性倒錯’ 할 때에 쓰는 그런 말이 되며, ‘낳을 산産’을 붙이면 ‘도산倒産’, 곧 개인이나 기업이 올바르지 않게 뒤집어져 재산을 잃고 망하고 파산하는 것이 된다.

마지막으로 나뒹굴었던 것이 한 20년은 되었을까? 어젯밤 오랫만에 넘어졌다. 밤길에 엎어졌다. 심하게 뒤집어졌다. 깜깜함 속에서 아픔을 한참 참아냈다. 아픔 속에서도 웃다보면 훨씬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고, 그 순간엔 그것밖에 할 것이 없어서 어설프게 웃어댔다. 어쩌면 혼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방에 올라와보니 팔꿈치니 무릎 관절이니 서너 곳 피가 흘렀다. 빈센트 반 고흐의 ‘꽃게’ 그림이 생각났다. 4살 아래 동생에게서 평생 신세만 지고 살아야 했던 빈센트가 그렸던 그림,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있다는 그림, 거의 생애 말기쯤에 그렸을 것으로 기억되는 그림이었다. 빈센트의 꽃게 그림을 아마도 15년쯤 전에나 사진으로 처음 보았을 것이다. 그때에 ‘엎어져 버둥거리는 게는 자신이고 올바르게 서 있는 게는 동생 테오일까? 빈센트는 형제를 이렇게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빈센트는 자신이 엎어져있어서 곧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다본 것일까?…등등’ 오랫동안 마음 아프게 그 그림을 보았던 생각들이 났다.

빈센트에게는 그것이 마지막 즈음이었을지 모르지만, 바오로 사도가 “우리는 모두 땅에 엎어졌습니다.”(사도 26,14) 했을 때, 그에게는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의인은 일곱 번 쓰러져도 일어나지만 악인은 불행 속으로 넘어진다.”(잠언 24,16) 했다. 부디 불행 속으로 넘어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