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인한 폭력, 그리고 하느님의 선택

가장 잔인한 폭력, 그리고 하느님의 선택

 

어쩌면 가장 잔인하고 잔혹한 폭력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사되어진 폭력이다.

 

소위 종교의 이름으로 상처받고 불구가 되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시다 못해

분노하시고 화까지 내시었다.

 

당신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찬미하며,

주님, 주님하고 부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폭력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노하셨다.

 

사제나 봉헌된 자들의 불친절한 한 마디,

공공연하게

교회의 강론대에서 지적되고 쫓겨난 삶들,

식탁에 같이 앉기를 거부당했던 사람들,

잊혀지고 소외되었던 질병과 죽음,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가슴속에

상처가 되어 있는 아픔,

이혼중이거나 별거중인 부부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동성연애자들,

한 형제요 한 자매였으나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던 집에서 추방당해야 했던

집 없는 사람들,

사랑을 기대하고 찾아갔으나 오히려 그곳에서

더 큰 폭력으로 내몰려야 했던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오늘날

참으로 막대한 정치·경제적 불확실, 불합리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명분있는 폭력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인간들의 원칙과 처세로,

그렇게 대치시키고 싶은 유혹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면서

하느님의 노여움보다는

하느님의 자비가 더 크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진노는 잠시 뿐이고

그 어지심은 영원하시다.”(시편 30,5)

시편 구절을 매일 아침 노래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말도 안 되게 막막한 현실,

끝없는 아픔과 상처,

그리고 거대한 폭력을 이겨내고자 하신

하느님의 선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철저한 비폭력이었고,

(power)이 아닌 무능(powerlessness)

무력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구원하셨다 했다.

 

그리고 이는 과거형이 아니고 아직도 현재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