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독獨

‘홀로 독獨’이라는 글자는 ‘혼자’나 ‘홀로’라는 뜻을 지닌 글자이다. 이 글자를 순서대로 펼쳐서 큰 개나 사슴을 가리키는 ‘개 견犭’ + ‘눈 목目’ + ‘쌀 포勹’ + ‘벌레 훼/충虫’의 조합이므로 개와 벌레가 서로 바라보고만 있을 뿐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외롭다는 뜻이라고 풀이한 것을 읽고 피식 웃었던 적이 있다. 떠돌이 개가 목욕을 안 해서 애벌레가 붙어 있다는 식이거나 마당의 개나 풀밭의 애벌레가 상관없이 사는 ‘홀로’ 사는 삶이라고 풀이하는 것과 비슷해서였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뜻과 소릿값으로 나눠보는 방식에 따라 개나 사슴을 뜻하는 ‘개 견犭(=犬)’이라는 글자와 ‘해바라기 벌레/애벌레/나라이름 촉蜀’의 결합으로 보면서 개(犬)는 무리를 지으면 싸우므로 홀로 떼어놓아야 한다거나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그렇게 썼을 뿐 글자의 한 부분을 차지한 ‘애벌레/나라이름 촉蜀’은 그저 음을 나타낼 뿐이라고 하면 풀이는 되지만 썩 개운치가 않다.

그래서 ‘애벌레/나라이름 촉蜀’이라는 글자를 뜯어본다. 누에처럼 생긴 해바라기 벌레, 혹은 애벌레의 모양에서 왔다는 ‘촉蜀’이라는 글자는 몸의 모양(勹)에 머리를 상징하는 눈(目→罒)이 붙어 있는 모습이었고, 나중에 벌레라는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벌레 충(虫)자를 추가하였다 한다. 삼국지의 유비劉備가 세운 촉蜀이라는 나라에서 두우杜宇라는 왕이 호의를 베풀었다가 나라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죽어 대궐이 보이는 서산에서 밤마다 울었다는 두견새,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歸蜀道(*촉나라로 돌아가는 길) 운다’라는 싯구가 되었던 바로 그 ‘촉’이다. 그렇게 ‘蜀’을 풀어봐도 원래의 ‘홀로 독獨’이 왜 ‘홀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는가는 깔끔하게 파악되지는 않는다. 사전에서도 『개는 무리지어 살지 않고 혼자서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홀로’라는 뜻이 생겼으며, 이로부터 단독單獨, 고립孤立, 독특獨特하다 등의 뜻이 나왔다. 또 자식이 없거나 아내가 없는 사람의 지칭으로도 쓰였다.(하영삼, 한자 어원 사전, 196쪽)』할 뿐이다.

독獨은 독毒이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은 결국 홀로이다. 맹자孟子 때부터 ‘환과고독鰥寡孤獨(홀아비 환, 적을/과부 과, 외로울 고, 홀로 독)’이라 하여 늙고 아내가 없는 사람, 젊고 남편이 없는 사람, 어리고 부모가 없는 사람,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을 어울려 보살피는 것이 정치라고 하였으므로 나의 기억 안에도 감히 혼자 사는 이가 없던 시대와 사회가 있었지만, 어느덧 독거노인獨居老人이니 고독사孤獨死라는 말은 보편화가 된 지 오래고, 함께 모여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으며, 그렇다고 혼자 살게 된 이들을 소위 사회의 안전망이라는 시스템이나 연금 혹은 재취업 기회로 보살펴야 하는 것이 후세에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 될 뿐이라 하기도 하고, 홀로 내팽개쳐진 삶은 잘못된 삶을 살았던 본인이 자초한 것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하기까지도 한다. 나이 들어 품위 있는 삶을 누릴 권리는 어쩌면 나이 들기 전의 영악함이나 이기적인 대비만으로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주 목요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던 할아버지 신부님들이 계시는 양로원에 다녀올 때면 다소 우울한 기분이 오래 남는다. 세계에서 문명이 가장 발달한 선진국이라는 이곳 미국, 그중에서도 편안한 노후를 위해 은퇴한 이들을 위한 도시라는 이곳 탬파, 그래도 괜찮은 축에 속한다는 양로원의 먼지투성이 침대에 간신히 걸터앉아 30분 이상 걸려 홀로 일회용 기저귀 팬티를 갈아입고, 앞인지 뒤인지도 모르게 고무줄 바지를 한쪽으로 쏠리게 입고 난 뒤,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다시 누워 깊은 잠에 빠져 기약 없고 대책 없는 소모의 들숨 날숨으로 끊어질 숨의 순간을 마냥 기다린다는 것은, 그곳이 일터요 생업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에게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오늘 1935년 생이신 폴이라는 신부님이 그렇게 누워있는 침대 곁 탁자에는 구정물 같은 탁한 물에 틀니가 담긴 플라스틱 컵, 얼룩투성이의 안경, 아직 사용하지 않은 흐트러진 몇 개의 기저귀 더미, 플라스틱 소변 통, 하나는 내게 주어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3개들이 작은 비스킷, 그리고 빛바랜 성모님의 상본 한 장이 놓여있었다. 간병인은 며칠 전 뉴욕에서 왔던 전임 원장이 목에 걸어주었다는 아주 예쁜 묵주는 누가 훔쳐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이 글은 2019년 10월 탬파에 있을 때의 글이다. 폴 신부님은 이미 올해 2020년 초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