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력/역力

이 글자는 팔에 힘을 주었을 때 근육이 불거진 모습이라고도 하고, ‘칼 도刀’의 변형으로 칼에서 나오는 힘을 뜻하게 되었다고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 농경 사회로 전환되면서 동물이 끌기 전 사람들이 밭에서 힘들여 끌었을 쟁기나 가래의 모양이라는 것이 훨씬 더 근거 있는 얘기이다.

‘사내 남男’이 밭(田)에서 힘들여 쟁기질(力)하는 남자를 가리키고, 혼자서는 할 수 없어 여럿이 쟁기질을 해야 할 때를 가리켜 ‘힘 합할/합할 협劦’이라 하며, 그 글자 옆에 ‘밭 전田’과 ‘마음 심心’을 차례로 덧붙이면 힘들지만, 마음 맞춰 밭을 잘 가는 상황으로 보아서 ‘뜻 맞을 협勰’이라 하고, ‘합할 협劦’의 왼편에 많은 수의 상징인 ‘열 십十’을 놓아서는 많은 사람들이(‘열 십十’은 많다는 뜻) 힘에 힘, 그리고 힘을 더해 화합하여 힘든 일을 잘 해내므로 ‘화합할 협協’ 되며, 역시 왼편에 ‘작을 요幺’를 붙이면 작고 미숙하여 여린 힘밖에 없는 어린이를 지칭하는 ‘어릴 유幼’가 되고, ‘힘 력力’ 위에 ‘적을 소少’를 붙이면 ‘못할 렬/열劣’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뒤지는 상황이며, ‘갈 거去’를 왼편에 붙이면 억지로라도 힘으로 겁을 주고 밀어붙여 가게 하는 ‘위협할 겁劫’이 된다. ‘일할 노/로勞’는 ‘등불 형熒’의 변형으로 보아 등불까지 밝혀가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 되고, ‘힘쓸 노/로努’는 ‘종 노/로奴’를 위에 붙여 노비나 종처럼 힘들여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며, ‘장인 공工’을 왼편에 붙이면 힘들여 무엇인가 해내는 ‘공 공功’인데, 원래 ‘공工’이라는 글자가 황토를 다져 성이나 담을 쌓던 절굿공이 같은 모양에서 유래되었으므로 힘들여 일해야 하는 도구와 힘이 합쳐진 글자가 된다.

힘은 수고受苦(받을 수, 쓸 고)이고 애씀이다. ‘애쓰다, 애먹다, 애를 태우다, 애달프다’ 할 때의 ‘애’가 간(肝)이나 쓸개(膽)의 뜻을 지니고 있었기에 애간장이 녹는, 곧 간이 녹아내리는 슬픔이다.

『우리 문화에서도…‘힘’은 본래 좋은 것이 아니었다. 몸에 힘이 들어오는 것을 ‘힘 든다’고 하고, 몸 밖으로 힘이 나가는 것을 ‘힘 난다’고 한다. 힘이 들면 괴롭고 힘이 나면 즐겁다. ‘힘’은 사람이 일하는 사이에 슬그머니 몸 안에 들어와 고통을 주다가 쉬는 사이에 몸에서 나가는 귀신과 비슷한 존재였다. 힘은 사람에게 평생 붙어 있는 신체 또는 정신의 일부가 아니었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몸에 힘 들이며 사는 삶이 고생이고, 힘 안 들이고 사는 삶이 호강이다.(전우용, 힘 숭배의 시대)』

어쩌면 ‘힘’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긍정 아닌 부정否定이었다. 힘이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죄로부터 빚어진 인간이 살아야만 하는 숙명, 곧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창세 3,17.19)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힘의 실체는 낙원을 버림이고, 주제넘게 목에 힘이 들어가 하느님께서 하지 말라던 것을 하는 인간의 교만이다. 그래서 힘의 실체는 악령이다. 힘의 실체는 허상이다. 힘의 실체는 죄다. 그런데도 어느덧 현 시대는 서로 힘을 강요하고, 어쩌면 힘만을 추구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한없이 힘없는 어린 아기가 되셔야만 했고, 무능무력하고 힘없는 이의 표상인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해야만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