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칠七

성경의 ‘일곱’을 추적하다가 일곱을 두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곱의 매력에 빠진다.

기원전 2500년이나 3천 년쯤에 티베트에서 시작하여 히말라야산맥을 가로질러 지금의 파키스탄을 관통하는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인류 고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생겨나고 숫자라는 것들이 생겨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1961년~)는 자신의 잡학사전에서 숫자에 있는 곡선은 사랑을 나타내고 교차점은 선택의 기로를 나타내며 가로줄은 집착을 나타낸다고 풀이하면서 그중 ‘7’은 신의 후보생으로서 하늘에 매여 있음을 나타내는 가로줄이 있고, 아래쪽에는 곡선 대신 세로줄이 있는데, 이는 아래쪽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라 하고, 유럽 사람들이 이 숫자를 쓸 때 세로줄 한복판에 작은 가로획을 그어 쓰는데, 이때 생기는 교차점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시련을 겪어야 하는 단계를 표현한다는 것이니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세 가지 선으로 7을 풀이한 것은 그럴듯하다.

북반구 사람들의 밤하늘에 언제나 눈에 띄었던 북두칠성, 북두칠성 국자 모양의 끝과 그 전에 있는 별, 두 별의 사이를 똑바로 5배 정도 연장하면 북극성이 있는 자리이고 그 북극성을 바라보는 앞쪽이 북쪽이며 오른쪽이 동쪽이고 왼쪽은 서쪽, 등쪽은 남쪽이다. 북극성은 지구의 자전 축에 가까이 있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내가 올려다본 그 각이 그 지점의 위도이므로 길을 잃어도 언제 어디서나 찾아갈 수 있다고 했던 별이다. 북극성과 함께 북두칠성으로 일곱을 배웠고,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 순서를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부지런히 외워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한 별은 일곱이라면서 일곱을 또 기억했다.(맨 나중의 ‘천해명-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은 18세기 이후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발견된 별이고, 명왕성은 2005년부터 자기보다 더 큰 행성인 에리스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둘 다 태양계에서 제외되어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었다.)

그렇게 배운 일곱이라는 숫자는 오묘하고 신묘하다. 한 사람의 신원을 결정하는 얼굴이 일곱 개의 구멍으로 그 사람을 형성하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땅의 모든 것도 일곱으로 묶어 이해하려고 했다.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인 칠정七情(희喜‧노怒‧애哀‧락樂‧오惡‧욕欲‧애愛)으로부터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풀어보려는 시도까지(참조. 임석재, 일곱 번의 위기와 일곱 개의 자연-생태건축, 인물과 사상사, 2011년), 일곱은 거의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아우른다. 정육면체 주사위에서 마주 보는 면의 합은 7이고, 포유류의 목뼈가 일곱이며, 서양 음계도 일곱이고, 일주일도 일곱 날이며, 독일의 동화 <백설공주>에서 난쟁이도 일곱이고, 슬롯머신에서 잭폿이 터질 때도 숫자 7이 겹칠 때이며, 사서삼경의 <맹자孟子>도 7편이고, 인생에서 인간이 맞을 수 있는 최대의 복을 ‘일곱 개의 복(칠복七福)’이라 하며, 부처님께서도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깨우침을 설파하셨다 했고, 무지개의 색깔도 일곱이다.

‘일곱’을 두고 생명의 생성과 변화를 나타내는 시간의 주기로 풀어보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7이라는 주기가 여성과 깊이 관련되었다고 보아서 14살(2×7)에 초경이 시작되어 여성으로 거듭나며 49살(7×7)에 폐경이 된다고 보았는데, 이는 음의 원리를 지닌 달과 여성이 7의 4배수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으니, 달이 보름달에서 이레 동안 일그러졌다가 다시 이레 동안 채워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주기가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생김새를 두고 남녀 성기의 결합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원래 한자로 ‘일곱’을 나타내는 ‘七’은 무엇인가에 칼집을 내는 상황을 ‘열 십十’ 같은 모양으로 그리다가 ‘열 십十’과 구별하기 위해 현재의 모습처럼 세로축의 끝을 구부려 만든 글자로 보는 것이 일반이다. 칼로 무엇을 내려치는 원뜻대로 ‘끊다’ ‘베다’ 혹은 ‘자르다’라는 뜻을 담아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하지만, 서양의 “일곱”은 흔히 ‘럭키 세븐lucky seven’이라 한다. 1을 7로 나누면 ‘142857’이라는 6개의 숫자로 된 순환마디가 끝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7에서 시작한 142857까지도 ‘이상한 수’ ‘신비의 수’ ‘신이 만든 숫자’ ‘놀라운 수’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이 수에 2나 3, 4, 5, 6을 곱하면 원래 이 수를 구성하는 6개의 숫자가 자리만 바뀔 뿐 그대로 존재한다. 142857을 둘씩 끊어서 더하면 99(14+28+57=99)가 되고, 3자리씩 둘로 끊어서 더해도 999(142+857=999)라는 값이 된다. 그리고 142857에 7을 곱하면 999999(=142857+857142)가 된다. 142857을 제곱하면 ‘20408122449’라는 수가 나오는데, 이를 둘로 끊어서 더하면 원래의 수가 나온다. 즉 20408+122449=142857이다. 그 외에도 7과 142857의 사연은 계속 이어진다. 사실 이런 얘기들은 유한소수와 무한소수의 구별, 그리고 순환마디가 반복되는 순환소수의 법칙, 신기한 숫자들의 놀이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3과(3은 신성수神聖數라고 하는데, 최초의 양수인 1과 최초의 음수인 2가 결합하여 생겨난 변화수로서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수이기 때문이다. 3은 짝수인 2처럼 둘로 갈라지지 않고 원수原數인 1의 신성함을 파괴하지 않은 채 변화하여 ‘완성된 하나’라는 상징을 지닌 수이다. 3에는 세상을 이루는 천‧지‧인이 담겼고, 시간의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담겼다) 땅의 동서남북 사방四方을 상징하는 4가 더해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수, 우주의 수, 전체와 완전을 가리키는 수, 신비한 수, 마력이 깃든 수, 7보다 작은 어떤 수도 7을 나눌 수 없으므로 손상되지 않는 처녀 수, 자연이 기뻐하는 수, 십계명의 10과 성령칠은의 7을 합한 17이라는 수를 1부터 17까지 차례로 더했을 때 나오는 153이 되게 하는 수(참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일곱 제자와 만나실 때 그들이 잡도록 허락하신 물고기 수, 참조. 요한 21,11),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는 일곱 봉인의 수(참조. 묵시 5장), 가장 완벽하고 거룩한 수, 신전의 일곱 계단과 일곱 문으로 표현되는 수, 십자가 위 예수님의 일곱 번의 말씀을 담은 수(조세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년-은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가상칠언”을 관현악곡, 현악 4중주곡, 오라토리오 편성으로 1786, 1787, 1796년에 각각 작곡), 7일을 3번 거듭하는 삼칠일(3‧7일)에 어미 닭이 품은 달걀이 병아리가 되고 굴 속에 있던 곰이 마침내 사람이 된 수(곰이 100일 만에 사람이 되었는지, 21일 만에 사람이 되었는지는 또 다른 논제이다), 끝이 없는 수…‘일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