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과 저쪽

 

이쪽과 저쪽


   사회가 건전하게 발달하게 되면 모양새로 보아 마름모꼴이 되는 것이고, 우리 사회는 그런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오래 전에 초등학교 아닌 국민학교에서 배웠다. 상류층과 하류층이 각각 위 아래로 조금씩이고 가운데 중산층이 많은 형태로 사회 구성원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측컨대 이런 이론이 요즘 애들 교과서에서 사라진지 오래일 것이고 아마 지금쯤 이런 내용은 형편없는 구시대의 이론이 되었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라는 것이 이른 바 발달(?)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상류층이 조금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중산층이 아닌 하류층으로 전락하면서 우리가 배운 바에 따라 아주 부적절한 사회요 퇴치의 대상인 피라미드 형태의 사회가 된다는데, 우리 대한민국도 어김없이 이런 자본주의의 과정을 밟아가는 사회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첨단을 이룬다는 미국은 일찍이 이를 내다보고 자기네들 화폐의 기초 단위인 1달러짜리 지폐의 뒷면에 삼각형의 피라미드를 새겨 넣었던 것일까? 우리나라가 정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혹시 삼각형의 사회에 진입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아직 마름모꼴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이것이 어쩌면 중산층이라고 착각하는 하류층의 자위 때문은 아닐까?


   삼각형의 피라미드 사회는 소위 20:80의 사회이다. 가진 자 20과 못가진 자 80으로 이루어진 사회인 것이다. 요즘 양극화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를 짐짓 우리 사회가 마름모꼴의 사회이고 건전한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위아래로 조금씩 분포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졌다는 식으로 이해하려 든다면, 어떤 의미에서 이는 틀린 말이다. 양극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소박하게 말하여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대다수의 빈자와 소수의 부자로 사회가 재편되었다는 것이고 이 둘의 사이가 질적으로 점점 더 큰 편차를 지니게 된 것을 염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시대 우리 안에 커다란 고민거리요 화두로 부각되어졌다는 양극화의 문제는 이미 우리 사회가 충분히 피라미드 꼴의 사회가 되어있음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음에 다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또 다른 양극화의 갈래들 속에서 내가 이쪽일지 저쪽일지를 놓고 고민한다. 부자와 빈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기득권층과 소외층,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 사지 멀쩡한 자와 신체적 결함을 가진 자, 강자와 약자, 속이는 자와 속는 자, 강탈하는 자와 뺏기는 자, 억압하는 자와 핍박받는 자, 때리는 자와 맞는 자, 보수와 진보, 우익과 좌익 등등. 모든 사회 계층을 이렇게 양분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마땅치도 않지만, 우리는 매일 매순간 어떤 형태로든 우리 스스로가 어느 쪽인가를 가늠하면서 조바심 속에 살아간다. 이쪽은 저쪽을, 또 저쪽은 이쪽을 두려워하고 불편해 하며 귀찮게 생각하고 심지어 위협으로 여기면서 타도할 대상으로까지 몰아간다. 그리고 내가 다행히 저쪽이 아니고 이쪽인 것에 대해 안도하기도 하며, 내심으로는 분명히 저쪽임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으면서 이쪽인 양 허세와 오기를 부려보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서 이런 저런 양극화의 해법들이 있다지만,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게 변두리 내지는 나머지, 소수점 이하, 속된 표현으로 떨거지와 같은 신분을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의 생각엔 서로가 서로의 처지, 차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우리가 서로 네가 있음에 내가 있을 수 있음을 감사하는 것이고, 이 세상살이라는 것이 정해진 잣대로 치수를 재어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게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며, 들쑥날쑥함 속에 세상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빚어낸다는 사실을 자녀들과 후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고, 우리 모두 조물주가 나에게 허락하신 것들과 너에게 허락하신 것들을 서로 나눌 수 있어서 네발 달린 짐승이 아니고 인간일 수 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